[욜로 갈맷길] ①더 비기닝-고즈넉한 어항·아기자기 등대 한 번에 즐긴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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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 좋고 걷기 부담 없는 ‘갈맷길 축소판’ 10선
기장 임랑해수욕장~일광해수욕장 간 9.1km 1코스
6개 어촌·어항 천천히 걷다 보면 고즈넉한 풍취 ‘물씬’
중동항에서는 개성 넘치는 5개 등대가 한 눈에 담겨

기장군 일광면 중동항에서 카메라를 와이드샷으로 펼치면 중동항의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와 함께 저 멀리 칠암항의 붕장어 등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까지 5개의 등대가 사진에 모두 담긴다. 기장군 일광면 중동항에서 카메라를 와이드샷으로 펼치면 중동항의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와 함께 저 멀리 칠암항의 붕장어 등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까지 5개의 등대가 사진에 모두 담긴다.

새해가 되니 여기저기에서 ‘운동할 결심’이다. 의지를 불태우지만 곧 흐지부지 작심삼일이기 십상이다. 걷기는 어떨까? 인간은 ‘호모 에렉투스’(직립보행 인간)에서 진화하지 않았던가. 누구나 걷기 때문에 걷는 건 운동이 아니거나 운동이 되지 않는다고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결코 얕잡아 봐선 안 된다. 걷기는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심폐 기능을 개선하고 성인병 발병률을 낮춘다. 허리 디스크와 무릎 연골을 튼튼하게 한다. 특별한 장비도 필요 없다. 걷는 시간만큼 수명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케빈 클린켄버그는 자신의 책 <걷기의 재발견>에서 “걷기는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했다.

걸으려 마음만 먹으면 주변의 모든 곳이 운동장이다. 걷기 좋은 길이 있다면 그건 최신식 운동장이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지난해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이라는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렸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욜로는 MZ 세대 등에서 유행하는 ‘YOLO(You Only Live Once)’와 경상도 방언 ‘욜로(여기로)’가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한 중의적 이름이다. 욜로 갈맷길은 대중교통과 잘 연계돼 접근성이 좋다. 코스별 10km 안팎으로 부담도 적다. 코스별로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로 테마를 입혀 테마 재료를 찾는 재미도 있다. <부산일보>는 욜로 갈맷길을 한 달에 한 코스씩 완보한다. 숨은 매력을 널리 알리고 또 다른 걷기 초보들의 도전을 응원한다.



임랑해수욕장에 있는 민박집들.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들과 달리 어촌의 고즈넉한 정취가 여전히 남아 있다. 임랑해수욕장에 있는 민박집들.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들과 달리 어촌의 고즈넉한 정취가 여전히 남아 있다.

걷기 초보, 욜로 갈맷길에 도전하다

욜로 갈맷길 1코스는 기장군 임랑해수욕장~일광해수욕장 간 9.1km 구간이다. 첫 번째 코스인 만큼 코스 이름도 ‘갈맷길 더 비기닝’이다. 아점을 든든히 챙겨 먹고 길을 나섰다. 임랑해수욕장까지는 동해선 월내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 벡스코역에서 동해선으로 환승했다. 걷기의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으려면 자가용 이용은 금물. 철저히 BMW(Bus·Metro·Walk)여야 한다.



동해선 월내역에서 도로를 건너 마을 샛길을 지나 월내해안길로 접어든다. 탁 트인 바다에 마음이 뻥 뚫린다. 월내해안길을 따라 나 있는 해맞이로를 20분 정도 걸으면 1코스의 시작점인 임랑해수욕장에 다다른다. ‘임랑’은 아름다운 송림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한다. 그 이름처럼 백사장 뒤쪽 병풍 같은 소나무 숲과 은빛 바다가 아름답다. 오래된 민박집들이 줄지어 있고 담장 벽화에는 ‘겨울아 어서 가라’ 봄꽃이 피었다.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들과 다르게 개발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아 고즈넉한 어촌의 정취가 남아 있다. 임랑해수욕장 끝자락 임랑문화공원에는 철강왕 박태준 포항제철 초대 회장을 기리는 박태준 기념관이 있다.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으며 작고 소박하지만 위엄과 품격을 갖췄다.

박태준 기념관에서 10시 방향으로 꺾어 해안으로 나 있는 일광로를 따라 20분가량 쭉 걸으면 문동방파제와 문중방파제가 나온다. 두 방파제는 양팔을 뻗어 바다를 끌어안은 듯하다. 문동방파제와 문중방파제 사이 항구는 중동항이다. 문중항과 문동항으로 분리돼 있던 어항이 하나로 합쳐져 중동항이 됐다.

중동항 부둣가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와이드샷으로 펼치니 문동방파제에 있는 빨간 등대, 문중방파제에 있는 하얀 등대에서부터 저 멀리 붕장어 등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까지 5개의 등대가 한 폭의 사진에 모두 담긴다. 등대 풍년이다.


칠암항에 있는 붕장어 등대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 칠암항에 있는 붕장어 등대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
칠암항은 지역 특산 붕장어로 유명하다. 칠암 붕장어 마을에는 붕장어 횟집과 구잇집이 즐비하다. 칠암항은 지역 특산 붕장어로 유명하다. 칠암 붕장어 마을에는 붕장어 횟집과 구잇집이 즐비하다.

붕장어 마을 들렀다 신평소공원에선 잠깐 휴식

칠암항은 중동항과 나란히 붙어 있다. 문중방파제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칠암 붕장어 마을’이라고 써 있는 큰 안내판이 반긴다. 붕장어 횟집과 구잇집이 즐비하다. 일본말인 ‘아나고’로 아직도 많이 불리지만 우리말인 붕장어가 바른 말이다. 기름기를 쭉 빼고 잘게 썬 붕장어회는 고슬고슬한 흰 쌀밥 같기도 하고, 눈꽃 같기도 하다. 깻잎에 붕장어회를 올리고, 콩가루, 초장과 버무린 양배추까지 올려 싸 먹는 맛은 고소하고 담백해 일품이다. 칠암이 잘 알려진 이유도 지역 특산 붕장어회 덕분이다. 걷다 출출해지면 붕장어회로 식도락을 즐겨봄 직하다.

칠암항에는 붕장어 등대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가 있다. 붕장어 등대는 칠암항을 대표하는 붕장어를, 갈매기 등대는 부산의 시조인 갈매기, 야구 등대는 ‘구도 부산’을 상징한다.

칠암항에서 해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란히 붙어 있는 해파랑길과 갈맷길 이정표가 보인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을 이어 구축한 50개 코스(총 길이 750km)의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길 3코스는 기장 임랑해수욕장에서 대변항까지 이어지는데, 욜로 갈맷길 1코스는 해파랑길 3코스와 겹친다.

해안가를 조금 걸으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신평소공원이 나온다. 신평소공원은 범선 모양 전망대를 비롯해 팔각정, 분수대가 있는 작은 공원이다. 전망대에 오르니 갯바위들이 오밀조밀 모여 빼어난 풍광을 선사한다. 신평소공원은 공원 해안가 갯바위 퇴적층에서 공룡의 발자국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신평소공원 벤치에서 잠시 휴식한 뒤 다시 걷다 만난 어항은 동백항이다. 동백항 부둣가 연석에 그려진 새빨간 동백꽃들이 인상적이다. 동백항 끝자락에 있는 동백해녀복지회관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문을 닫았다. 고령화와 수산 자원 감소 등으로 사라져가는 해녀들이 떠오른다.


신평소공원 범선 선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바다 풍경. 공원 앞 퇴적층 갯바위에는 공룡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신평소공원 범선 선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바다 풍경. 공원 앞 퇴적층 갯바위에는 공룡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왼쪽으로는 동해 바다가, 오른쪽으로는 해송이 줄지어 있는 일광로. 온정마을에서 일광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은 나무 덱 길이 일부 있지만 제대로 된 보도가 없어 안전에 유의해서 걸어야 한다. 왼쪽으로는 동해 바다가, 오른쪽으로는 해송이 줄지어 있는 일광로. 온정마을에서 일광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은 나무 덱 길이 일부 있지만 제대로 된 보도가 없어 안전에 유의해서 걸어야 한다.

바다 정취 만끽하며 걸으면 어느새 갯마을로

부경대 수산과학연구소를 두르는 길을 따라 걸으면 온정마을로 이어진다. 온정마을로 접어드는 길목에는 ‘온정마을 버스킹 공간’이라는 팻말이 붙은 공간이 나온다.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작고 아담한 공원이다. 온정마을은 고리 원전이 건립되면서 이곳으로 집단 이주해 만들어진 마을인데, 지금은 카페촌이 됐다.

온정마을을 지나면 왼쪽으로는 동해가 오른쪽으로는 해송이 이어지는 차로(일광로) 옆을 따라 2km가량 걸어야 한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30분 정도 상념을 떨치고 걸을 수 있다. 덕분에 걷기에 충실해진다. 간간이 나무 덱 길이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제대로 된 보도가 없다. 그래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일광로를 따라 쭉 걷다 삼기물산 건물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이동항이 보인다. 임랑항, 중동항, 칠암항, 동백항…. 벌써 다섯 번째 어항이다. 이동항에서 1코스의 종착점인 일광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에는 해안가 쪽으로 드넓은 공터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10월 열린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BTS 공연 후보지였던 옛 한국유리 공장 부지다. ‘여기가 거기구나’ 힐끔힐끔 쳐다본다.

일광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엔 이천항이 있다. 이천항이 있는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는 1953년 발표된 오영수의 단편소설 ‘갯마을’의 무대가 된 곳이다. 이천항으로 가는 길모퉁이 벽에는 영화 ‘갯마을’ 속 장면들이 액자 형태로 붙어 있다. 길모퉁이를 돌면 횟집이 빼곡히 줄지어 있다. 한 모녀가 얘기를 나누며 생선을 마리는 모습이 정겹다.

강송교를 건너 일광해수욕장에 다다랐다. 일광해수욕장 초입 별님공원에서 돌비석 하나를 발견한다.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다. 문학비에는 소설 속 한 구절을 새겨 놓았다. ‘서(西)로 멀리 기차 소리를 바람결로 들으며, 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싹대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있다…’ 소설 ‘갯마을’의 첫머리다. 그 기차 소리가 들리는 곳이 지금의 동해선 일광역이다.

걷기 앱을 이용해 측정한 1코스 완보 시간은 3시간 15분, 걸음 수는 1만 6837걸음, 거리는 11.45km였다. 1코스는 어촌·어항의 고즈넉함과 바다 풍광이 아기자기한 등대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코스다.


이천항으로 가는 길모퉁이 벽에 붙어 있는 영화 ‘갯마을’ 속 한 장면. 이천항으로 가는 길모퉁이 벽에 붙어 있는 영화 ‘갯마을’ 속 한 장면.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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