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93. ‘소나무 한그루’는 없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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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팀장

〈“첫눈에 반한 물범 지키려 백령도 눌러 앉았어요”〉

이 어느 신문 제목을 보자면 띄어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바로 ‘눌러 앉다’ 이야기다. 이렇게 ‘누르다’ ‘앉다’가 긴밀히 결합해 한 단어가 되면 뜻이 달라지는 것.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 뜻풀이다.

*눌러앉다: ①같은 장소에 계속 머무르다. ②같은 직위나 직무에 계속 머무르다.

그러니 저 제목에서 ‘백령도 눌러 앉았어요’는 ‘백령도 눌러앉았어요’라야 했다. 아래 제목에서도 비슷한 게 있다.

〈찬바람 쌩쌩, 내일 아침 초겨울 추위…내륙 한파특보〉

여기서 ‘찬바람’은 붙여 쓸 게 아니라 ‘찬 바람’으로 띄어 써야 하기 때문이다. 표준사전을 보자.

*찬바람: 냉랭하고 싸늘한 기운이나 느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찬바람이 나다./그녀는 어딘가 모르게 찬바람이 돈다./물론 아내의 말은 부질없는 노파심에서이지만, 그 이름을 듣자 나는 아무 죄가 없는데도 공연히 등골로 찬바람이 훑고 갔다.〈김원일, 노을〉)

이러니 비유적인 표현이면 몰라도, 실제로 차가운 바람은 ‘찬 바람’으로 써야 하는 것.

〈“자율에 맡겨도 충분” “저위험군부터 벗어야” “재유행하는데 큰 코 다쳐”〉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는 기사 제목인데, 이 가운데 ‘큰 코 다쳐’ 역시 띄어쓰기 잘못으로 뜻이 어색해졌다. 표준사전을 보자.

*큰코다치다: 크게 봉변을 당하거나 무안을 당하다.(…아직 미혼이라고 남의 일처럼 듣다가는 큰코다치지, 큰코다쳐요.〈황순원, 신들의 주사위〉)

이처럼 비유적 용법으로 쓸 땐 한 단어이므로 모두 붙여서 ‘큰코다쳐’라야 했다. 저렇게 띄어서 쓰면 말 그대로 ‘커다란 코를 다친다’는 뜻.

이처럼, 띄어쓰기를 조심해야 할 말은 생각보다 많다.

‘귀신 같다/귀신같다’가 뜻이 달라지는 건, 한 단어 ‘귀신같다’가 ‘동작이나 추측이 정확하고 재주가 기막히게 뛰어나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꽃 피다/꽃피다’ 역시 한 단어 ‘꽃피다’가 ‘어떤 현상이 한창 일어나거나 벌어지다./어떤 일이 발전하거나 번영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구별해야 한다. 그래도 와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언덕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외로이 서 있다.’

여기 나온 ‘한그루’가 ‘한 해에 그 땅에서 농사를 한 번 짓는 일/한 농경지에 한 종류의 농작물만을 심어 가꾸는 일’이라는 걸 아신다면, 띄어쓰기에 좀 더 신경을 쓰시려나.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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