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으로 보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5. 한국화단의 영원한 맞수, 변관식과 이상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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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법으로 느끼는… 힘찬 산맥의 역동성 vs 한국적 풍경의 온화함

변관식 '관폭(觀瀑)'(1961,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변관식 '관폭(觀瀑)'(1961,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한국화 감상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작가의 필법을 살펴보는 것은 주요한 감상 포인트이다. 전통적으로 동양화에서는 붓질에 작가의 정신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믿었다. 필법을 깊이 들여다보면, 작품의 맛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2023년 새해를 맞이해 전통 화단의 현대화를 이끌었던 두 거장. 한국화단의 양대 산맥을 소개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필법으로 남다른 화풍을 개척한 소정(小亭) 변관식과 청전(靑田) 이상범. 두 작가는 한국 최초 근대적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의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사사하고, 이후 한 시대를 풍미하며 한국 미술사의 주요 걸작을 남겼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두 작가의 작품에서 풍기는 분위기만큼이나 사뭇 다른 삶을 살았다.

변관식은 1899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변관식은 외조부인 소림(小琳) 조석진의 돌봄 속에서 자연스레 미술을 익혔다. 조석진은 1918년 발족해 1936년까지 이어진 ‘서화협회’를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조석진은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할아버지 임전(琳田) 조정규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조정규는 산수화, 인물화에도 능했으나 특히 ‘어해(魚蟹)화’로 이름을 알렸다. 조정규, 조석진, 변관식으로 한국화의 전통과 화풍이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변관식 ‘수유정’(1920년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변관식 ‘수유정’(1920년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변관식은 1923년 서화미술원 출신의 이용우, 노수현, 이상범 등과 ‘동연사(同硏社)’를 조직, 전통 회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1950년대 중후반 이후 변관식은 화업에만 몰두하며 재야 화가로 살았다. 제도권에 편입된 미술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변관식은 전국의 명산을 유랑하며 이를 화폭에 옮겼다. 변관식은 겸재 정선 이후 금강산을 가장 잘 표현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수집: 위대한 여정’에 출품된 변관식의 작품은 총 3점으로, 초기 화풍부터 중후반기까지 아우른다. 변관식의 화풍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필법은 묵을 쌓아 중첩하는 적묵법과 ‘선을 깨트린다’는 뜻의 파선법이다. 먹을 튀기며 그리는 파선법을 통해 날카로우면서도 경쾌하며 리듬감이 넘치는 선을 보여준다. 또 적묵법은 강렬한 먹빛을 보여주는 반면서도 투명함을 잃지 않고 개성 넘치는 화면을 이룬다. 이와 함께 드라마틱한 구도, 힘찬 산맥의 역동성은 변관식만의 독자적 양식을 완성했다. ‘관폭’(1961)은 폭포를 관람하고 있는 두 인물을 풍경과 함께 그린 작품으로, 역동적인 구도와 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상범 '산거유거(山居幽居)'(196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이상범 '산거유거(山居幽居)'(196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이상범은 1897년 충청남도에서 태어났다. 1914년 무료로 그림을 배울 수 있는 서화미술회 강습소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이상범은 강습소를 졸업한 후 심전(心田) 안중식의 화실에서 지도받으며 ‘청전’이라는 호를 받았다.

이상범은 신문 연재 삽화 소설을 그리기도 했다. 1927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하며 각종 삽화와 도안을 그렸다. 이상범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에 가담했다. 유니폼에 붙은 일장기를 지워 신문에 실었는데, 이때 이상범을 비롯해 <동아일보> 관계자 10여 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40여 일간의 모진 고문을 겪었고, 이후 <동아일보>는 무기한 정간 조치를, 자매지 <신동아>는 폐간됐다.

이상범은 ‘우리나라 화가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화면에 담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거대한 산맥이 아닌 촌락, 어부, 야산의 고즈넉함을 그렸다. 이상범은 수묵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화단의 대가로 인정받았고 대중적으로도 사랑받았다.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향수 어린 풍경, 포근함과 친숙하고 정감 있는 화면은 누가 봐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이상범 '산음촌가'(1955, 가나문화재단 소장).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이상범 '산음촌가'(1955, 가나문화재단 소장).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이상범의 화면은 수평의 이상적이면서도 안정적인 구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완만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곡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상범은 독특한 미점법을 활용해 화면을 구성했다. 쌀 모양을 닮은 미점법은 붓을 옆으로 뉘어서 점을 찍는 방식이다. 이상범은 이 필법을 통해 자신이 추구한 온화하면서 한국적인 화면을 주제에 걸맞게 표현해냈다.

‘산거유거’(1960년대)는 6폭 병풍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산속 농가의 풍경과 함께 농부들의 잔잔한 일상을 평온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가나문화재단의 소장품 ‘산음촌가’(1955)는 산의 그림자와 촌가 풍경이 어우러진 대작으로, 이상범 필법의 극치를 엿볼 수 있다.

김경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정리=오금아 기자)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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