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새해 여는 들놀음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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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달이 휘영청 뜨면 사람들은 들판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능청스런 탈바가지를 덮어쓴 이들의 난장 마당이 거기서 펼쳐졌다. “우리 영감 못 봤소?” 집 나간 지 오래된 영감을 찾아 나선 할미의 초라한 몰골. 그을린 얼굴에 두 눈은 아래로 축 처지고 볼때기는 비뚤어졌는데 입은 왼편에 붙었다. 그래도 입담만은 사뭇 장중하기 그지없다. 극에 몰입한 관객들은 질펀히 울고 웃더니, 한숨짓다가 폭소한다. 막판에는 아예 탈꾼과 관객이 같이 섞여 한바탕 춤을 춘다. 그 표정들이 훤한 보름달마냥 그리 밝을 수가 없다. 우리 조상들이 새해를 맞는 모습은 이렇게 신명 났다. ‘수영야류’ 이야기다.

야류(野遊)라는 말에서 짐작되듯, 이는 ‘들놀음’ 혹은 ‘들놀이’를 가리킨다. 들로 길로 나가 길놀이도 하고 함께 춤도 추고 탈놀음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원래는 경남 내륙 지방의 오광대놀이가 전해진 거라는데 수영에는 수영야류가, 동래에는 동래야류가 전승됐다. 오광대놀이는 전문적인 광대 패들이 펼친 연희다. 수영야류나 동래야류는 가무와 풍류를 즐기던 우리 지역 토박이들이 이를 받아들여 토착화한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 오전에 고사를 지내고 달 밝은 밤 넓은 마당에 횃불을 밝히면서 밤을 도와 놀았던 그 신명의 역사가 200년 이상이다.

야류의 핵심은 탈놀음인데, 악사의 굿거리장단에 춤과 재담이 곁들여진다. 수영야류는 양반, 영노(사자를 닮은 괴수), 할미·영감, 사자춤이 나오는 네 마당 구성이다. 양반의 위선을 꼬집는 말뚝이의 해학, 할미의 질투와 실수로 빚어지는 불행을 승화시킨 익살, 그것을 껴안은 흥과 멋이 통렬했다. 1930년대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된 수영야류는 1960년대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대사·가면·춤사위·가락 등의 원형이 정비된 뒤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됐다.

수영야류 전승에 이바지해 온 조홍복 선생이 얼마 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수자로 보유자로, 40년 이상 수영야류의 보존과 전승에 헌신한 생이었다.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탈춤 18개 속에는 수영야류와 동래야류도 포함된다. 우리 탈춤이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데에는 고인을 비롯한 전승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야류는 새해 정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열린 놀이, 종합예술이다. 우리 전통예술이 공동체의 가치를 일깨우고 새로운 문화 브랜드로 비상하는 올 한 해를 꿈꿔 본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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