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특화된 공립고 조성”… 부산형 ‘차터 스쿨’ 시동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산은·2차 공공기관 이전 예정
교육부 시범 모델 요건은 충족
내달 중 구체적인 밑그림 공개
법 개정·교육 특구 지정 관건
“유사 자사고 불과” 우려 목소리도

부산시교육청 전경. 부산일보DB 부산시교육청 전경. 부산일보DB

부산시교육청이 산업은행,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자율형 공립고 설립을 제안하기로 하면서 부산형 ‘차터 스쿨’의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의 첨병으로 우수 공립고 설립을 꼽고 있는 만큼 제도적 보완과 기관의 투자 의지만 있다면 ‘산업은행고’, ‘한수원고’도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전 기관 연착륙·지역 교육여건 개선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은 지난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교육과정, 예산, 교육시설 등에서 기존 학교보다 특화된 공립고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시교육청은 최근 지역 인재가 다른 지역 우수 고등학교로 유출되는 것에 주목했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한 해 100여 명의 학생이 인근 울산 현대 청운고, 경북 포항제철고, 경북 김천고 등으로 자사고 ‘유학’을 떠난다. 부산에서는 해운대고가 자사고로 명맥을 유지하지만, 2019년 시교육청이 자사고 미지정을 선언한 이후 이어진 소송 때문에 올해는 정원 미달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시들해진 상태다.

이 같은 시교육청의 일성은 교육부의 대통령 국정 보고로 구체화됐다.

교육부는 올해 대통령실 업무 보고에서 “내년부터 혁신 도시를 중심으로 기업·교육청이 함께 운영하는 공립고를 정책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다음 달 중 교육부는 자사고, 외고 등 고교 운영 방안 계획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한국판 차터 스쿨의 구체적인 밑그림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차터 스쿨은 정부 예산을 받지만 교육 과정은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의 경우 이전 공기업, 공공 기관 등이 장학형 재단을 설립하는 형태로 자금을 대는 ‘협약형 공립고’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표적인 지역 균형 발전 공약으로 추진하는 산업은행 이전의 경우 ‘산업은행 고등학교’ 설립이 추진되면 정부 차원에서는 부산을 중심으로 공교육 살리기, 지역 균형 발전 두 가지 정책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부산 ‘차터 스쿨’ 실현 가능성은?

부산에서는 혁신 도시 신설 정도의 규모로 산업은행의 2차 공공기관 이전이 진행될 예정인 만큼, 교육부가 구상하는 한국판 차터 스쿨 시범 모델의 요건은 모두 갖춘 상황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고등학교 신설에는 학교총량제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교육부가 자율형 공립고 설립을 공개적으로 밝힌 만큼 제도적 규제를 대폭 풀어 주는 방식으로 자율형 공립고 설립에 시동을 걸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육부가 공립고의 교육과정 자율권을 부여하기 위한 초·중등 교육법 개정에 나서는 것이 현재로서는 첫 단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법 개정에 시간이 걸린다면 교육부가 내년 지정할 예정인 교육특구도 자율형 공립고 설립의 열쇠가 될 수 있다.

부산이 교육특구로 지정된다면 학교 설립의 자율성과 학교 내 교육 자율성도 보장된다. 현재 부산시 차원에서 교육특구 지정이 의욕적으로 추진되는 만큼 교육특구 지정이 이뤄지면 법 개정 전이라도 우수 공립고 설립이 가능하다. 교육특구 취지 자체가 부산의 교육 역량을 올리는 것인만큼 자율형 공립고 설립과 교육특구 지정을 일종의 ‘패키지 정책’으로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지원단장을 맡은 이성권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부산이 실질적인 금융중심지가 되기 위해선 금융기관 이전뿐 아니라 인재 육성도 병행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교육청의 자율형 공립고 추진에 시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고교 서열화 ‘제2 자사고’ 우려도

미국에서는 약 300만 명의 학생이 다니는 7000여 개의 차터 스쿨이 운영되고 있다. 교육의 평등권을 표방하는 차터 스쿨은 종교·성별·인종에 따른 차별을 없애기 위해 시험 없이 학생을 뽑으며 학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

교육부가 차터 스쿨을 자율형 공립고의 모델로 꼽는 것도 ‘제2 자사고’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판 차터 스쿨은 미국처럼 학비가 없지만 현재로선 학생선발권을 부여하지 않고 지원자가 많을 경우 추첨제를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유사 자사고가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과거 자사고가 도입되면서 고교 서열화가 이뤄졌고 이로 인해 지역 일반고에 위기가 온 만큼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한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당시 자사고(자율형사립고), 마이스터고, 기숙형 공립고 등 다양한 고교를 만든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마이스터고, 기숙형 공립고 폐지론이 일기도 했다. 고교 다양화를 통해 교육 개혁을 하기보다는 고교 내실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율형 공립고 추진 과정에서 정부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