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하나에도 낑낑댔지만 학생들 후퇴하지 않고 날라” [끝나지 않은 전쟁, 기억해야 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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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병 참전 언론인 박기병

춘천대첩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박기병 재외동포저널 회장. 강원일보=신세희 기자 춘천대첩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박기병 재외동포저널 회장. 강원일보=신세희 기자

춘천대첩 기념 평화공원에는 ‘6·25 참전 학도병 기념탑’이 있다. 탑 뒤편에는 강원도립 춘천농업대(현 강원대), 춘천사범학교(현 춘천교대), 춘천공립중학교(현 춘천고), 도립 춘천농업대학 부속농업중학교(현 소양고), 춘천고등여학교(현 춘천여고)에 다녔던 5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춘천사범학교 8회 학도병 이름 중에는 ‘박기병’이 있다. 언론계 원로인 강원도 양구군 출신 박기병(91) 재외동포저널 회장이다.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춘천대첩 기념관을 건립하자’는 칼럼을 꾸준히 쓰며, 춘천대첩을 후대에 알리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당시, 박 회장은 춘천사범학교 3학년 졸업반으로 교생실습을 하러 나갔다. 그날 오후에 피란민 행렬이 시내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배석 장교(교련 교사)는 “학생들도 이런 난국에는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을 비롯한 춘천사범학교 학생들은 학도호국단 단원으로 춘천대첩에 참전했다. 탄약고(현 남춘천역 인근)에서 포탄을 들어 포진지였던 춘천사범학교까지 날랐다. 당시 16포병대대는 춘천사범학교 앞에 105mm 포를 배치했다.

박 회장은 “포탄을 하나만 들어도 벅차서 낑낑댔지만, 학생들은 후퇴하지 않고 날랐다”며 “우두동에 있던 동방제사 춘천공장 여공들도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과 학생들에게 제공하며 도왔다”고 말했다. 그는 6·25 전쟁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춘천대첩이 변변한 기념관 없이 잊히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박 회장은 “중국 산동성 유공도에 갑오전쟁기념관이 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에 패전했지만, 후세에 왜 패전했는지 망국의 역사에서 교훈을 주기 위해 교육의 장으로 만든 기념관”이라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강원일보=신하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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