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탈모 치료비 지원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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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신체에 대한 관심이 높은 때 연령대를 막론하고 가장 피하고 싶은 외모의 변화로는 아마도 탈모가 첫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풍성한 머리숱은 자신감의 원천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듬성듬성한 머리숱은 한탄의 소리를 절로 나오게 한다. 탈모 기피는 지금만 그런 게 아니라 수천 년 전에도 그랬던 모양이다.

이미 기원전 1550년 무렵 고대 이집트의 의학 문서인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도 탈모 치료의 처방이 있는데, 하마 악어 수고양이 등의 지방을 섞어 머리에 바를 것을 권했다고 한다.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염소 오줌을 사용했고, 고대 로마 때부터 대머리를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탈모 해결을 위해 시쳇말로 안 해 본 것이 없었다고 한다.

탈모와의 싸움에 무력감과 허망함을 수없이 느꼈을 옛 선인들의 눈물겨운 역사는 21세기라고 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많은 연구로 새로운 치료제가 꾸준히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지는 못한 것을 보면 그렇다.

게다가 현대의 복잡한 사회 구조와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점점 탈모 인구를 늘게 하고 있다. 장년층만이 아니라 청년들에도 탈모가 흔해지면서 이제 우리 사회의 관심사로까지 부상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청년들이 탈모 때문에 자존감과 의욕을 잃고 심리적인 상실감에 빠진다면 참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포퓰리즘 논란으로 설왕설래했지만, 지난 대선 때 탈모 치료비 지원 얘기가 나온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는 않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지자체 차원에서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는 곳이 늘고 있어 주목된다. 며칠 전에는 충남 보령시가 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하는 만 49세 이하 시민에게 1인당 최대 200만 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대구시의회도 지난해 12월 탈모 진단을 받은 19세~ 39세의 시민에게 치료 바우처를 제공하는 내용의 지원 조례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서울 성동구는 이미 작년 5월 전국 최초로 탈모 치료비 지원 조례를 제정해 명문화했다.

여기에 형평성과 의료자원 왜곡을 우려하는 지적도 나오지만, 시민 삶의 만족을 위한 지자체의 시도를 긍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평가야 어떻든, 탈모로 괴로워하는 이들이 자존감을 회복해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제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일단 다행이라 하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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