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재명의 당헌, 문재인의 당헌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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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文 ‘보궐선거 귀책 때 무공천’ 당헌 마련
2021년 4월 보선 때 원칙 지키지 않아
쓴소리 했던 李, 본인 위해 당헌 또 바꿀까

2021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장.

그해 4월로 예정된 부산시장·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문 대통령에게 곤혹스런 질문이 던져졌다. 더불어민주당이 당헌을 바꿔 해당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이던 2015년 4·29 재보선 패배 후 혁신위원회를 만들어 당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당헌 제96조)는 원칙이 만들어졌다. 당시 당대표는 문 대통령이었고, ‘문재인의 정치적 올바름’을 상징하는 조항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오거돈 부산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 비위 사건으로 보궐선거가 다가오자 민주당은 대한민국의 제1, 제2 도시를 반드시 사수하라는 강성 목소리에 휘둘려 당헌을 바꿔버렸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답했다.

“제가 당대표 시절 만들어졌던 당헌에는 단체장 귀책사유로 궐위가 될 경우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헌법이 고정불변이 아니고 국민의 뜻에 의해 언제든지 개정될 수 있듯이 당헌도 고정불변일 수 없습니다. 제가 대표 시절에 만들어진 당헌이라고 해서 신성시될 수는 없습니다. 당헌은 종이 문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 당원들의 전체 의사가 당헌입니다. 민주당 당원들이 당헌을 개정하고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의 선택과 당원의 선택에 대해 존중한다는 생각입니다.”

3개월 뒤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당시 경기도지사이자 대선주자였던 이재명 현 민주당 대표는 생각은 달랐다.(2020년 7월 2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정치인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얼마에 팔기로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가격이 폭등해서 누가 2배로 주겠다고 하더라도 그냥 옛날에 계약한 대로 팔죠.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잖아요.(중략) 우리 당원이나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면 무책임한 소리가 아니냐 하겠지만, 당연히 엄청난 손실이고 감내하기 어려운 게 분명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국민한테 약속을 했으면, 공당이 문서로, 규정으로까지 정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게 맞고요. 무공천하는게 저는 맞는다고 봅니다.”

당시 이 대표는 ‘친형 강제 입원’ 의혹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으로 대선 출마의 길이 열리면서 기사회생한 상황이었다. 누구보다 ‘선명성’이 뚜렷한 이재명스러운 발언이었다.

요즘 대선에 패배한 이 대표가 검찰청을 들락거리고 있다. 그러자 민주당에서는 또 다시 당헌 개정 문제가 불거졌다. 아니 지난해부터의 진행형이라고 해야한다.

제80조(부패연루자에 대한 제재) 1항이 그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전당대회를 앞두고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한다’는 조항을 ‘금고 이상 유죄 판결 시 정지’로 바꾸려 했다.

대장동 개발, FC 성남 후원금 의혹 등 각종 사건에 연루된 이 대표가 기소될 때를 대비한 당헌 개정이라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나왔다. 그러자 비상대책위원회가 수습에 나서 1항은 그대로 나두고, 3항을 개정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개정된 3항은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무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달리 정할 수 있다’다. 원래는 당무위원회가 아닌 ‘윤리심판원’이 그 결정을 하도록 돼 있었다.

윤리심판원은 외부 인사가 원장을 맡고, 당무위는 당대표가 의장이 된다. 이 대표에 대한 직무정지 판단을, 이 대표가 의장을 돼 당무위에서 ‘셀프’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청래 최고위원 같은 친명(친이재명)계 인사들은 당헌 80조를 아예 폐지하겠다는 주장도 한다.

2년 전 문 대통령은 당헌을 꼼수로 개정하는 쪽으로 손을 들어줬다가 명분도 잃고, 선거도 패배하는 쓰라린 아픔을 맛봤다. 그게 결국 정권 재창출 실패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이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당헌을 바꾼다면 이 대표가 좀 더 자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장사꾼들도 신뢰가 중요하다’고 한 이 대표의 과거 발언은 또 다시 부메랑이 되어 이 대표 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가격할 것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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