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성 그리는 문학으로, 무한한 사랑으로 나아가야”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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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 평론가 첫 평론집
‘무한한 사랑의 세계’ 펴내
문학 사랑에 지역·청년 호명
해양문학도 이야기 지평 넓혀야

강희철 문학평론가. 신생 제공 강희철 문학평론가. 신생 제공

사랑은 무엇일까.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강희철 문학평론가의 첫 평론집 <무한한 사랑의 세계>(신생)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말하고 있다. ‘지역과 문학의 자리에 서서’가 부제다. 작가·책·담론·독서를 각각 비평과 맞세운 4개 장에 총 26편의 글을 실었다.

그에 따르면 문학을 통해 근대 이후엔 가능하지 않다고 치부하는 ‘어떤 총체성’을 꿈꾸는 것이 무한한 사랑이다. 무한한 사랑은 문학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는 시인 네루다를 가져온다. 네루다는, 농부 광부 공장직공 정비공이 그의 시 한 줄을 읽고 이마의 땀을 훔치거니 미소 지으며 “그는 동지였다”고 말할 수 있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왕관이다.’ 네루다는 그것을 ‘위대한 기쁨’이라고 칭했는데 온 지구적, 우주적 연대가 가능할 것 같은 마음, 그런 마음의 형식이 무한한 사랑, 문학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를 기교에 그치게 하는 것, 지인들을 향해 자기만의 서고에서 뽐내기 위해 쓰는 것은 ‘미래를 향한 마음의 실천’,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아마도 지금 문학의 한 폐단일 것이다.

먼저 그는 무한한 사랑의 세계와 관련해 ‘지역’과 ‘청년’을 호명하고 있다. “지역의 헐벗음을 넘어설 실천 지표가 필요하다.” 예컨대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무크지 <쨉> 같은 주체적 집단지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는 “구원은 신이 아닌 우리 자신 스스로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역의 갱신을 위해 청년이 나서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부산의 ‘수많은 배회자들’ ‘늙은 청년들’이 중앙동과 서면의 거리를 소설처럼, 시처럼 다시 걸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 거리에서 서서 다시 ‘청년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한한 사랑의 세계>. 신생 제공 <무한한 사랑의 세계>. 신생 제공

그는 평론집에서 지역 문인들, 이규정 조갑상 최영철 문성수 박향 정혜경 조명숙 이상섭 황은덕 최정란 김형로의 작품을 불러내 의미 부여하고 있다. 한 예로 황은덕의 소설집 <한국어 수업>을 비평한 ‘무한한 사랑과 적대의 세계’란 글에서 그는 “저 외로움의 깊이, 슬픔의 깊이를 부수고 이 소설처럼 너와 내가 대화하고자 하는 사랑의 시/공간을 지금-여기에서 쟁취할 수 있는가” 물으며 ‘그 쟁취’를 채근한다.

다음으로 그는 ‘해양문학’에서도 무한한 사랑을 확장할 것을 주장한다. 그간 해양문학은 ‘배를 중심으로 항해하는 문학’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작가의 해양문화에 대한 경험적 토대만 강조하고, 개인 감수성에 기댄 상처와 향수의 소재로만 바다를 다뤘다는 것이다. 그런 고착화한 틀을 벗어나 해양을 표류하며 살았던 해적들, 탄자니아 진지바르 섬과 같은 노예시장이 있었던 일본 나가사키와 중국 마카오의 풍성한 이야기들로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학 언어는 인간의 엄중한 맹세처럼 말과 삶, 사물을 아우르는 절실한 윤리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통상 근대 이후를 넘보면서 문학의 위상은 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새롭게 구성될 수 있는 가치가 언제나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다. 문학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문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적 경지, 그 자체였다.” 그 경이롭던 문학에 무한한 사랑을 다시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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