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구멍 난 양말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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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은 고대인이 거친 자연환경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지역에서는 주로 마찰 완화를 위해, 추운 지역에서는 하체 보온을 위한 필수 품목이었다. BC200~100년 청동기 시대부터 인류의 의복과 함께 많은 변화를 겪었고, 발에 밀착되는 니트 형태로 발전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고대 이집트 안티노폴리스 무덤에서 발견된 AD300~500년경에 제작된 매듭 없는 샌들용 짧은 양말이다. 양말은 중세 이후에는 옷과 함께 인간의 패션 욕구를 표현하는 형태로 기능이 점차 확대됐다.

우리나라에 니트 양말이 전해진 것은 조선 후기 고종 7~8년경이다. 선교사들이 양말 짜는 기술을 도입한 데서 비롯됐다. 일제 강점기에 양장 차림이 선호되면서, 버선에 비해 간편하고 실용적인 양말이 급속히 대중화됐다. 1919년에는 미국 감리교선교회가 운영하던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실습실에 미국제 최첨단 자동 양말기계 16대가 설치돼 수공업에서 기계 산업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양말은 소설이나 시, 영화에서 신분의 상징으로도 활용된다.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는 고아 흙수저 출신 미혼모 여직공 팡틴의 처량함을 ‘헝겊모자와 무명으로 기운 코르셋, 뒤꿈치가 구멍 난 양말을 착용한 모습’으로 묘사됐다. 한국에서도 힘든 시절, 양말 구멍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던 기억, 전구에 끼워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일상적이었다.

구멍 난 양말이 한국 정치판에 뜬금없이 소환됐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토크 콘서트에서 해진 양말을 보여 준 데 대해 김기현 의원이 “구멍 난 양말을 신어야 할 만큼 가난한지 모르겠다. 저와 아내는 흙수저이지만, 구멍 난 양말을 신을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다”고 공격하면서부터다.

집권 여당 대표 후보가 걱정할 숭숭 구멍 뚫린 것이 양말뿐일까. 난방비와 고물가 등 민생 위기와 지방 소멸, 안보 위협 등 심상찮은 국내외 상황에서 다양한 정책 경쟁이 사라진 정당 민주주의의 구멍부터 메꿀 걱정은 급하지 않을까. ‘제때의 한 땀이 나중의 아홉 땀을 덜어 준다’는 속담이 있다. 양말에 난 구멍이 너무 커지기 전에 미리미리 고쳐야 수월하다는 교훈이다. 세상 물정을 아는 정당과 정치인이라면 살림살이가 나아진 요즘에는 구멍 난 양말은 쉽게 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듯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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