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난방비 폭탄에 복지 안전망 균열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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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 샤워 자제 권고하는 보육원
겹겹이 옷 껴입고 오들오들 생활
고물가에 식비 줄이는 복지시설
물품 기부 대신 현금 지원 하소연
비상경영 돌입한 곳도 부지기수

도시가스 요금 인상으로 난방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5일 부산 부산진구의 한 빌라 외벽에 부착된 가스계량기. 김종진 기자 kjj1761@ 도시가스 요금 인상으로 난방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5일 부산 부산진구의 한 빌라 외벽에 부착된 가스계량기.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달 부산 A보육원은 예견됐지만 피하고 싶었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아이들에게 “난방비가 많이 올라 앞으론 온수 샤워 시간을 줄여 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이미 30여 명의 아동과 청소년들은 난방비를 아끼려 겹겹이 옷을 껴입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샤워마저 줄이라는 말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아껴도 1년 새 40% 넘게 오른 난방비 고지서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난방비를 비롯한 공공요금과 생필품 등 물가 상승으로 취약계층의 마지막 쉼터라고 할 수 있는 복지시설들마저 심각한 운영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시설의 아이들은 추운 생활을, 노약계층은 건강 악화까지 감수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부산의 또 다른 아동시설인 B보육원은 최근 물품 지원을 해 주던 후원자들에게 부득이하게 현금 지원을 부탁했다. 지난달 말 고지된 90만 원 넘는 난방비를 빠듯한 시설 운영비로는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후원자들은 쌀, 간식 등의 생필품 지원 대신 난방비를 내주었다. 보육원 관계자는 “덕분에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현금으로 대체된 생필품을 구해야 하는데, 물가가 너무 올라 이것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학원 등을 구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방과 후 프로그램을 지원해 주는 부산의 C지역아동센터. 지난달부터 이 센터는 온풍기마저 꺼진 상태로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올겨울 난방비가 감당이 안 돼 전기 온풍기를 구했는데 전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아이들이 오기 전 온풍기로 미리 방을 데운 뒤 온풍기를 끄고 아이들의 열기로 온기를 유지하고 있다. 비단 난방만이 문제가 아니다. 센터 관계자는 “점심, 저녁 아이들에게 밥을 주는 것도 힘들다”며 “음식 재료비가 너무 올라 어쩔 수 없이 부모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예산에 맞는 선에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몸이 아픈 취약계층에게 공공요금 인상은 삶의 질을 넘어 생사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부산의 D그룹홈(공동생활가정)은 뇌전증 등을 앓아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 3명과 시설장이 모여 생활하는 소규모 공동체다. 이곳의 난방비는 10만 원 후반대에서 1년 새 25만 원 가까이 올랐다. 침대 대신 그나마 냉기가 덜한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등의 노력에도 난방비 지출은 예상보다 더 컸다. 결국 입소자들이 가장 좋아하던 음악 치료 프로그램도 월 4회에서 2회로 줄이는 등 일상은 더욱 힘겨워지고 있다. 식단도 점점 단출해지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늘 먹던 계란프라이와 마늘종볶음 외의 반찬을 추가할 여유조차 없다. 아픈 이에겐 체온 유지와 영양 섭취가 필수인데 기본을 지키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D그룹홈 시설장은 “6년 동안 공동생활가정을 책임져 왔지만, 이번처럼 경제적 부담이 심했던 적은 없었다”며 “고기를 달라는 입소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비교적 큰 시설도 운영이 버거운 건 마찬가지다. E노인복지관의 경우 1년 전 430만 원이었던 난방비가 850만 원으로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복지관은 결국 화장실 불을 한 개만 켜는 등 경비 절감을 위한 비상 경영에 들어간 상태다. 복지관 관계자는 “다른 복지시설의 상황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경비 지출 증가가 복지 서비스 약화로 가면 안 되는데, 걱정이 많다”고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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