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악보다 성실해야 합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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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진 경제부 부동산팀장

‘성실하다’는 ‘정성스럽고 참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성실한 태도, 성실한 학생 등으로 긍정적인 뜻으로 사용합니다. 성실과 악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악은 성실합니다. 악은 왜 성실한 것일까요. 자기 이익을 취해야 하고 그 의도를 숨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빌라왕’ ‘건축왕’ ‘전세왕’ 등 일련의 사건들은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얼마나 성실했는지 보여줍니다. “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이용해 먹는 것이고, 법을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는 것이지”라는 어느 한 영화 대사처럼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주리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법의 구멍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이들의 성실함은 그 수법에서부터 잘 드러납니다. 빌라왕 김 모 씨는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 등 주택 1000여 채를 ‘무자본 갭투자’로 사들입니다. 김 씨의 수법은 건축주, 브로커 등과 짜고 시세 정보가 없는 빌라와 다세대 주택을 매입하거나 신축해 매매가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전세가율(주택매매가격에 대비한 전세가격의 비율)이 100%라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이 된다는 점을 사기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용으로 사용하는 치밀함도 보였죠. 갭투자를 활용하면 사실상 자기 자본 없이 신축 빌라 등을 무한정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대규모의 전세 사기를 마무리한 이들은 수익을 나눠 갖고 명의를 넘깁니다.

빌라왕 김 씨도 사실은 전세 사기에 이용된 ‘바지 사장’이라는 것이 경찰의 수사 결과입니다. 이 모든 것을 성실하게 준비했던 이는 법을 잘 이용해 먹고 잘 빠져나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윗선’이 밝혀진 것이 빌라왕 뿐이니까요. 이 사건 외에도 주변에는 많은 전세 사기 피해 사례가 들려옵니다. 전세 잔금을 치른 뒤 ‘확정일자’를 받으면 괜찮은 줄 알았던 보통 사람들. 하지만 확정일자의 효력은 다음날 생기니 계약 당일 성실한 악이 근저당권설정등기를 하면 확정일자가 사실상 무효화됐습니다. 집주인이 바뀌는 사실을 작정하고 숨긴다면 임차인은 집주인이 바뀐 걸 계약 만료, 갱신 시점이 돼야 알 수 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허점을 우리는 그동안 몰랐을까요. 아니면 악과 성실함이 함께 하지 못한다고 순진하게 믿었던 것일까요. 정부는 부랴부랴 최근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지원 방안’을 내놓았지만 피해자의 삶은 이미 망가진 후입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빌라왕 같은 사태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들은 이미 빌라왕 사태를 막겠다는 정부 대책의 구멍을 찾고 법을 이용해 먹을 방법을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성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악보다 성실해야 합니다. ‘성실하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악에게 그대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단순히 피해 구제뿐만 아니라 정부와 제도권은 성실하게 이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다양한 변수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전세 자금은 미래를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고 지금껏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법과 제도는 악이 이용해 먹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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