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여전히 뜨거운 감자,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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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친원전 에너지 정책 타당성 의문
핵폐기물·밀집도 해소 대책 필요
핵력·방사선 근본 연구 우선돼야

탈핵정책을 5년 만에 뒤집어 친원전으로 돌아선 줄만 알았는데, 전기값을 비롯한 모든 에너지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때 아닌 혹한에 난방비 폭탄이 연쇄적으로 터지고 있다. 당장의 생존이 염려될 지경이다. 탄소중립을 내세워 친원전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는 에너지 정책은 타당한 것일까. 원전을 통한 에너지 생산의 경제적 효율과 안전성 모두 괜찮다고 백 번 양보하더라도, 과연 이대로 괜찮을 것인지 아주 현실적인 몇 가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핵폐기물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 원자력은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대신, 수십만 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 방사성폐기물을 내놓는다. 단순히 꽁꽁 막아 잘 쌓아 놓는 임시저장고, 영구처분장치의 문제가 아니다. 원전 내 저수고에 잠긴 폐연료봉(고준위 방폐물)이 차곡차곡 쌓여 더 이상 쌓을 공간이 없어질 때까지 40년간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은 직무유기와, 임시저장고 없이는 원전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대국민 협박을 다 참아 낸다 하더라도, 또(!) 이대로는 안 된다.


지난 40년간 방관하다가 이제야 다급히 화장실 문고리 앞에 선 것 같은 약속을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해외의 원전 선진국들도 최근에야 40년 만에 고준위방폐물의 영구처분장치를 마련했다는 위로도 말이 안 된다. 세계 대부분의 원전은 핵연료 재처리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핵폐기물의 재활용이 가능하고, 재활용 후 핵폐기물의 양도 1/10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처리시설이 없이 생성된 핵폐기물을 있는 그대로 쌓아 놓아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1970년대에 원전 가동을 시작해서, 핵폐기물의 양도 우리보다 훨씬 적은 나라들조차도 가동 10년도 채 안 된 1980년대에 이미 고준위방폐장 준비를 시작했다. 당연히 지을 때부터 쏟아져 나올 핵폐기물을 생각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영구처분장치 공론화와 입지 선정 및 건설에 수십 년이 소요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국민 협박 끝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임시저장고를 앞으로 몇 개나 더 ‘임시에 임시’ 딱지까지 붙이면서 늘려 가야 할지, 생각만 해도 답답해진다. 이제라도 나중이 아닌 당장의 핵폐기물에 대한 단·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대도시를 지척에 둔, 세계 최대 밀집도의 원전을 언제까지 고집할 것인가. 건설 당시만 해도, 영남지역의 남동임해공업단지 건설로 제조업과 철강업 등 산업적 전기 수요가 클 때였지만, 지금은 어떤가. 원전 밀집지역에서 넘치도록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 등 전기 소모가 막대한 타지로 송전하기 위한 송전탑 시비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당연히 핵폐기물도 밀집돼서 생산될 것이고, 고준위 방폐물을 멀리까지 운반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비록 추후 논의 예정이라고는 하나, 어차피 저장시설은 결국 원전 밀집지역 인근이 최우선 후보지일 수밖에 없다. 원전 운영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위험부담을 갖고 있는 마당에, 수요도 없는 곳에 원전을 밀집시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부작용을 밀집시키는 것이 과연 올바른 국가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핵폐기물의 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면서도 핵무기 개발이 힘든 새로운 핵연료 재처리 방식이라거나, 선박이나 우주선, 심지어 전기충전소에까지도 사용 가능한 소형 원자로의 개발 등, 아주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먼저인 것이다. 무턱대고 친원전 회귀와 원전의 가동 연장처럼 과거로 되돌아갈 일이 아니다. 사실 최근 EU에서 원자력이 친환경에너지로 분류됐다고 대서특필 됐지만, 선결돼야 하는 현안을 필수조건으로 내걸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고저항성 핵연료의 사용’과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리대책’이 그 조건인데, 해외의 원자력 선진국들조차 여전히 원자로의 근본적 핵심 위험요소와 핵폐기물의 위해성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력의 경우 비록 핵력과 방사선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대규모 인명 살상과 에너지 생산에 성급히 활용됐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해외의 선진국들은 핵력과 방사선의 연구·개발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우리는 당장의 효율적 응용과 임기응변의 대책 마련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을 뿐, 창출된 재화를 근본적인 새로운 질문과 가능성을 타진하는 기초연구에 재투자하는 일에는 대단히 인색한 실정이다.

말이 아닌 혁신적인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다. 생각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정보와 데이터를 토대로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드러나게 해야 미래의 과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 에둘러 정책과 방침부터 먼저 정하고 시작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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