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과학기술의 이면을 보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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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게 정의를 묻다/이채리


로봇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편해지지만, 로봇과 인간 사이의 윤리 문제가 발생한다. 사진은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한 장면. 부산일보DB 로봇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편해지지만, 로봇과 인간 사이의 윤리 문제가 발생한다. 사진은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한 장면. 부산일보DB

로봇·맞춤 아기·기억 제거 등

논쟁 뜨거운 7개 이슈 선별


최신 과학기술, 윤리 문제 도발

옳음·정당성·정의 관점서 탐색


우리는 유전공학, 로봇공학, 컴퓨터공학, 뇌신경과학, 나노공학, 의료과학 등 과학기술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덕분에 인간과 대화하는 AI 로봇이 등장했고, 현실 같은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게 됐고, 유전자 조작이 가능해졌으며, 뇌를 제어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머지않아 도우미 로봇에게 가사노동을 맡기고, 약물로 지능을 높이고,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설계하는 일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아침에 일어나면 로봇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나른한 오후에는 똑똑해지는 약으로 공부를 하고, 저녁 무렵이면 좋은 유전자로 설계된 튼튼한 다리로 운동을 하는 거다. 우리의 삶은 더 건강하고 편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삶은 문제가 없을까? 기술은 한편으로는 우리 삶에 도움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를 도발하곤 한다.


<기술에게 정의를 묻다> 표지 <기술에게 정의를 묻다> 표지

<기술에게 정의를 묻다>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기술의 다양한 이면에 대해 성찰하게 해주는 책이다.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인 저자는 뇌신경과학, 유전공학, 컴퓨터공학, 로봇공학, 나노공학 등 최첨단 과학기술이 불러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 가운데 7가지 이슈를 선별했다. 7가지는 인지 향상, 기억 제거, 맞춤 아기, 로봇, VR(가상현실), 동물실험, 포스트휴먼으로 학자들이 현재 논쟁 중인 핫한 이슈들이다. 모두 최신 기술이고 미래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기술들이다.

저자는 과학기술이 도발하는 문제들을 옳음, 정당성, 정의의 관점에서 탐색한다. 예를 들어 로봇의 지능과 자율성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편해지지만, 로봇과 인간 사이의 윤리 문제가 출현한다. 만약 로봇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로봇이란 단어를 최초로 만들어낸 카렐 차페크의 희곡 ‘R.U.R(Rossum’s Universal Robots)’을 보면 로봇은 처음에 인간을 위해 노동을 하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권력을 차지해 인간을 말살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도 로봇은 인간을 공격하고 함부로 죽이며, ‘매트릭스’에서는 AI가 인간을 자신들을 위한 건전지로 사용한다.

놀랍게도 이미 로봇은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 2016년 미국 텍사스주의 댈러스에서 로봇은 경찰관 5명을 해친 범인을 사살했고, 그해 12월 러시아 남부에서는 무장단체인 IS의 테러범이 로봇에 의해 제거된 바 있다. 이런 로봇을 킬러 로봇이라고 하는데 곧 전투에도 로봇들이 투입될 전망이다. 아직 살상의 최종 권한은 인간에게 있지만, AI의 발전 속도로 볼 때, 그 권한을 로봇에게 넘기는 건 시간문제다.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로봇에게 윤리강령을 프로그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봇을 만들 때 인간을 위협하지 않게끔 로봇이 지켜야 할 원칙을 미리 코드화하자는 것이다. 가장 최초의 원칙은 아시모프의 공상과학 소설에서 제시됐다.

저자는 테러범 한 사람을 죽이면 5명의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킬러 로봇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행위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계산해서 최대의 행복을 낳은 행위를 선택하는 공리주의와 도덕적 행위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줄 아는 이성적인 인간을 존중한다고 보는 칸트를 두 가지 선택지로 제시한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테러범을 처단해야 하고, 칸트에 따르면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아야 한다. 또 하나의 상황이 나온다. 운전 로봇이 버스에 승객 50명을 태우고 운전 중인데 갑자기 한 아이가 도로로 뛰어나온다. 황급히 차를 세우면 뒤에 오던 차와 충돌하며 승객 수십 명이 위험에 처한다. 이 경우 로봇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공리주의에 따른다면 아이를 희생시켜야 할 것이지만, 칸트에 따르면 그래서는 안 된다. 과연 로봇은 어떤 이론에 따라 선택을 내려야 할까? 그리고 로봇이 내린 선택은 우리의 상식과 일치할까? 로봇이 어떤 윤리 이론에 따라 행동할 것인지도 난해한 문제지만, 윤리 이론에 따른 행동이 우리 상식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저자는 “자율적인 로봇으로부터의 위협에 대비한 로봇과 로봇공학의 윤리가 필요하고 로봇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로봇이 진화할수록 우리의 윤리도 발전해야 한다는 얘기다.

건강하고 총명하고 운동도 잘하는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는 ‘유전자 맞춤 아기’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마이클 샌델은 아기의 유전자를 디자인하는 것은 부모가 지녀야 할 덕목에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아이는 선물이므로 원하는 대로 주문하는 게 아니라 감사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샌델은 이것이 부모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본다. 반면 뷰캐넌은 맞춤 아기 유전공학을 비판하는 샌델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맞춤 아기 시술을 이용하기로 선택한 부모들은 ‘선물로 인정하기’ 대신에 ‘아이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라는 덕목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게 왜 나쁜지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아이는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부모의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찬성 측과 반대 측이 팽팽히 맞선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저자는 7가지 이슈에 대해 어떤 견해가 정답일지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정답을 결정하기보다는 정의를 묻는 물음에 있다고 본다. 어떤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 생각하고, 묻고, 요청할 때 우리는 부정의, 부당함, 불평등에 안주하지 않고 정의, 정당함, 평등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채리 지음/궁리/340쪽/2만 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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