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어를 쓰면 세계가 변할까’ 궁리하는 괴짜 시인의 시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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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석 시인 6번째 시집 출간
‘그녀는 발표도 하지 않을 글을 계속 쓴다’
시골시인 프로젝트 기획한 장본인
큰 호흡의 시로 삶과 세계 추궁

‘괴짜’ ‘아웃사이더’로 불리기도 하는 성윤석 시인은 ‘어떤 단어를 쓰면 세계는 변할까’를 궁리한다고 한다. 부산일보 DB ‘괴짜’ ‘아웃사이더’로 불리기도 하는 성윤석 시인은 ‘어떤 단어를 쓰면 세계는 변할까’를 궁리한다고 한다. 부산일보 DB

‘괴짜’ ‘아웃사이더’ ‘반골’로 불리기도 하는 성윤석(57) 시인. 그가 출간한 여섯 번째 시집 제목은 <그녀는 발표도 하지 않을 글을 계속 쓴다>(아침달)이다. ‘발표’가 아니라 ‘글쓰기’ 자체가 중요하고, 계속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일까. 그는 창원에 살다가 서울로 가서 사업도 하다가, 그리고 다시 창원으로 돌아와 살면서, 얼마 전부터 인천에 일하러 다닌단다. 좀 종횡무진이다. 하기야 기자, 공무원, 바이오벤처 기업인, 묘지관리인, 자칭 ‘어시장 잡부’를 거쳐온 그다.

그런 화려한 이력보다 문단에서 더 화제가 된 ‘훈훈한 일화’가 있다. 2021년 <시골시인-K>라는 시집이 나왔었다. 경상도를 연고로 하는 시인 6명의 시집인데 그가 창작기금을 내서 나온 거라고 한다. 어시장 잡부로 일하며 창작기금을 댄 이유는 “중앙에 기대지 말고 지역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지역에는 잘 쓰는 ‘숨은 시인’이 얼마든지 있다는 거다.

오래된 모토 ‘지역’이 그를 통해 새로, 상큼하게 살아났던 거다. 그런데 ‘시골시인 프로젝트’는 지난해 제주의 <시골시인-J>, 그리고 올해 진주와 순천을 묶은 <시골시인-Q>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K팀’이 ‘J팀’에게 창작기금도 전달했다. 묵이 화선지에 그윽하게 번지듯, 시골시인 프로젝트는 지역에서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놓쳐선 안 될 것이 있다. ‘시골시인들의 시’가 성윤석 시인의 심중에 닿은 것은 ‘밥하고 빨래하고 노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온 손으로 쓴 시들’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것이 시라는, 시여야 한다는 거다. 성 시인은 벤처 기업가로 일하던 그 시절 어름에 세상을 바꾸는 일에 몰두하면서 10년간 시를 쓰지 않은 적이 있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려는 마음…, 이를테면 그는 시를 쓰지 않은 채, 시를 쓰고 있었다고 할까.

성윤석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그녀는 발표도 하지 않을 글을 계속 쓴다>. 아침달 제공 성윤석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그녀는 발표도 하지 않을 글을 계속 쓴다>. 아침달 제공

이번 시집에 5부로 나눠 실은 69편에는 날카롭고 섬세한 언어의 촉수, 활달하고 큰 생각, 언어가 가닿지 않는 모서리를 드러내려는 시어들이 다양하게 들어 있다.

‘산양/사냥’이란 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그는 화면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산양을 낚아채는 것을 봤다. 그런데 산양은 끝까지 독수리에 저항하고, 드디어 독수리가 크게 다쳤는지 발톱을 놓아버리고 쓰러지는 거다. ‘문득 예전에 독수리에 쫓기다 목을 잡히자,/그냥 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같이 뛰어내린 산양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그는 적는다. ‘같이 뛰어내릴 게 나도 필요한데//그것이 세계든 인간이든/자본주의든’. 무엇이 ‘번쩍하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삶을 살고 있을 우리를 추궁하는 듯한 이런 시도 있다. 한 번은 텅 빈 광장에 있는데 제법 큰 새가 머리 위를 천천히 선회하더란다. 새는 혼자 있는 시인을 먹잇감으로 알고 접근하려던 것이었단다. 그때 시인은 그 새가 자신을 ‘쪼아 뜯어 먹을 수는 있’을 거라며 ‘새의 판단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데 ‘새는 떠났고’ 대신 시인은 ‘생각해보았다/나를 먹이로/먹잇감으로서의 가치를’. 이 시의 제목은 ‘여기서 뭐 하세요… 라는 물음에 부딪쳤다’이다. 자신의 몸뚱이를 먹잇감으로 내놓고서 여기서의 삶이 온전한가를 추궁하는 거다. 그의 시에는 ‘큰 호흡’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농담’도 들어 있다. 그는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단다. ‘사진이 왜 없냐는 질문에/머리를 굴리다가/아마도 제 얼굴을/제 팬티로 생각했나 봐요,/라고 말했다/팬티를 보여줄 순 없지 않느냐고’ 그랬단다. 이런 방식이 ‘밖에서 밖으로’ 나가는 그의 방식인 거 같다. 그의 시쓰기가 지향하는 ‘그곳은 뜻밖, 이란/곳’(19쪽)이라고 한다.

그는 ‘자루는 터져버리는 것’이라며 ‘내가 나를 버티는 것이/가장 어렵다’(‘힘든 밤인가-지구’ 중에서)고 썼다. 그 어려운 삶을 붙든 가운데 ‘이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27쪽)고도 하지만 ‘정확하지 않은/문장의 장소를 찾’(37쪽)아서 그는 새로운 시, 깊은 시를 생각한다. ‘새롭지만 어두운 가능성의 단어들’을 생각하고 종내는 ‘어떤 단어를 쓰면/세계는 변할까’를 궁리한다(‘이석’ 중에서)고 한다. 시는 세계와 맞붙는 그런 것…. 그는 196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고, 1990년 24세 때 등단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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