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무엇이 우리를 비참하게 하는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문학평론가

최첨단 시대에 ‘트로트’ 같은 복고 열풍
이면에 숨은 사회의 불안·절망이 핵심
지나간 추억, 달콤한 향수에만 빠져서야

요새 부쩍 트로트 음악이 인기다. 최근 들어 경연 프로그램들이 여러 방송 채널을 점령하고 있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젊은 가수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아마추어들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한국 대중문화의 한 줄기를 차지하는 모습이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많은 국민들을 빠져들게 하는 트로트 열풍은 한동안 수그러들 낌새가 보이지 않을 듯하다.

이를 ‘한국 문화의 복고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그렇다고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잠시 고민에 잠길 수도 있겠다. 종편 프로그램에서 1980~90년대를 배경으로 당시 젊은이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내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또한 주류 회사에서 복고풍 상표를 붙여 시중에 유통해 판매고를 올리기도 한다. 여기에다 대중음악을 비롯해서 각종 광고나 상표 및 로고까지도 옛 추억을 상기하는 방향으로 기획해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체로 세상이 흉흉할 때 복고 열풍이 인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라거나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하는 식의 토로를 우리는 익히 들어 보았다. 이런 말을 내뱉는 심정이나 마음은, 현실이야 어떻든 그것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아무리 이 나라가 발전하고 잘살게 되었더라도 마음은 ‘옛’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사회 분위기에 관계없이 이미 흘러간, 그래서 더 이상 되찾을 수 없는 시간대와 환경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복고와 무관하지 않은 내용을 담아 주로 중년 남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프로그램이 있다. 저마다의 다양한 사정으로 가족을 등지고 산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기에 나온다. 이들을 가리키는 ‘자연인’은 이제 세간에 익히 잘 알려진 호칭이 되었다. 물론 여느 방송과 마찬가지로 해당 콘셉트와 기획에 맞춰 연출되고 편집된 프로그램이다. 진행을 맡는 개그맨의 익살과 재치가 ‘자연인’의 사연과 어우러져 쏠쏠한 재미를 주는 때문인지, 시청률이 웬만한 지상파 방송의 인기 드라마 못지않다.

최첨단 시대에 우리의 눈과 귀를 옛날로 돌리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흥미를 끄집어내 마치 전염병처럼 번지게 하는 ‘복고 열풍’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런 현상이 비단 최근에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사람들은 늘 과거의 기억과 추억을 현실 속으로 소환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곳이 언젠가는 지난날 그때의 시간과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세대 차이의 간격과 감성의 주기는 기성세대들이 겪은 것보다 훨씬 짧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그 긴 시간대의 세대 인식의 편차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변동 폭 또한 복잡해진다. 젊은 세대들이 유행처럼 쓰는 말이 곧바로 사전에 등재되는 시대다. 기성세대가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드러낸 말투와 몸짓은 하루아침에 ‘꼰대’라는 이름의 화살을 맞곤 한다. 옛 시간과 풍경과 문화에 열광하는 현상과, 세대 간 좁힐 수 없는 문화의 간극은 시간이 흐를수록 첨예해진다. 두 가지 상충된 분위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문화는 ‘죽음’을 잡아먹으면서 몸짓을 키우는 괴물들이 무대에서 펼치는 광란극이거나, 비참하게 끝난 연극을 응시하며 말없이 무대를 청소하는 이들이 만드는 드라마다. 옛것의 향수에 빠져 열광하면서도 제 옆의 이웃들이 겪는 처참함과 비극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게 바로 우리들이다. 복고든 무엇이든 자신의 재미와 환락을 위해서라면 곤경에 빠진 타인의 처지마저도 ‘식탐’의 대상으로 삼는 괴물 같은 모습이 바로 우리 문화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더욱 큰 문제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찾는 자리에서조차 자본 문화에 중독된 마음이 이미 들어앉아 있다는 점이다. 자본에 길든 마음과 습성은 의식한다고 해서 쉽사리 떨쳐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더 이상의 전망이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눈길을 과거로 돌린다. ‘늘 그래 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지난날의 영광을 단지 풍속이나 대중문화의 달콤한 추억 속에서만 찾는 사회는 불안과 절망이 가득 차 이미 더는 어쩌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버린 뒤다. 그러니 비참함은 언제나 우리 몫일 수밖에 없다. 세대 간 차이 속에서도 과거로만 눈길을 돌리는 우리 사회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든 장본인은 누구일까. 어느 누구도 결코 이런 문화를 바라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우리에게 보란 듯이 미끼처럼 던져 버렸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그 미끼를 덥석 물어 버렸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