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안개 낀 항로를 헤쳐가는 것”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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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희 소설집 ‘일각고래의 뿔’
6편 중 3편은 해양소설 소재
나머지는 베트남 등 배경 소설

유연희 소설집 <일각고래의 뿔>. 강 제공 유연희 소설집 <일각고래의 뿔>. 강 제공

유연희 소설가의 세 번째 소설집 <일각고래의 뿔>(강)은 삶의 단단한 의지, 상징 같은 ‘일각고래 뿔’을 찾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일각고래의 뿔은 고래가 살아남기 위해 엄니를 작살처럼 진화시킨 것으로, 삶의 돌올한 의지의 표상·상징으로 읽힌다. 그 뿔 속에는 ‘살기 위한 고래의 투쟁’(15쪽)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상징이 필요한가. 작품집에 실린 6편 단편에 따르면 우리 삶은 안개 속에 휩싸인 듯 대체로 딱 부러지지 않고 모호하다. 각 작품에서 여러 사건과 삽화, 얘기들은 서로 맞물리는 듯 맞물리지 않는 듯 뒤섞이는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독자가 소설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야기가 명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명쾌하지 않게 뒤섞는 것이 그의 소설 전략 혹은 글쓰기 스타일인 것 같다. 작가의 편에 서서 말하자면 그게 어쩌면 삶의 실상이라는 것일 터이다. 그 실상을 견디는, 그것을 추스르는 상징이 이를테면 일각고래의 뿔이다.

작가는 해양소설을 많이 써왔다. 3편은 해양소설 소재를 취했고, 3편은 스리랑카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방랑하는 뱃사람’에서는 28년 된 낡은 ‘똥배’를 몰고 나가 ‘바다와 삶의 안개’와 사투를 벌이는 늙은 선장이 나오는데 그의 소설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삶의 항로 위에서 ‘안개’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다. 퇴직의 경계에서 스리랑카 해외 주재원으로 내몰려 현지 도착 즈음에 설사병으로 고생하는 중년(‘블루 시드’), 부두 일을 하면서 끔찍하게도 손가락뼈를 일부러 부러뜨려 부상 보상금이라도 챙겨 지친 생활에 잠시 틈새를 마련하는 한부모 가장(‘손가락 꺾기’)이 그들이다.

그들의 삶은 불쑥불쑥 이런저런 일이 생기는 미로에 처하거나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기 일쑤다. 불법 포경선의 작살수 일행은 단속을 피해 일본으로 단체 도피를 하는데 하필이면 피난지가 지진이 일어난 구마모토다(‘일각고래의 뿔’). 또 생활에 지친 딸과 엄마가 인도네시아 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도 난데없이 진도 7.6의 지진과 맞닥뜨린다(‘송어회 이 이분’). 삶에 지친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도피나 여행을 떠난 곳에서 또다시 지진을 만난다는 것이다.

‘송어회 이 인분’에서 송어회는 수박 향을 내는 회다. 송어회는 뜻밖의 향을 내는 상징 같은데 인간은 제게 없는 것에 홀리지만 실은 송어회가 수박 향을 내듯 ‘내 속에 있는 줄 몰랐던 창’(181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의 ‘이 인분’은 둘의 동행을 뜻하는 것 같다.

작품의 안쪽을 밀도 있게 하는 것과, 작품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하는 것. 둘을 아울러야 하지만 그 갈림길에서 작가는 전자를 택하고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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