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계 뇌전증의 날’…숨겨야 할 병 아닌 고칠 수 있는 병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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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진단 통한 병역비리 온상으로 인식
우리나라 환자 수 14만 명 넘어 ‘흔한 병’
환자의 70%는 약물로 발작 조절 가능
약물 효과 없을 땐 수술·전기자극술 등

뇌전증은 숨겨야 하는 병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해운대백병원 신경과 박강민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해운대백병원 제공 뇌전증은 숨겨야 하는 병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해운대백병원 신경과 박강민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해운대백병원 제공

최근 의사, 운동선수, 배우 등이 병역 비리 수법으로 ‘가짜 뇌전증’을 악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뇌전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뇌전증은 사회적 편견이 큰 질환 중 하나로, 실제로 많은 환자가 병으로 인한 고통보다 뇌전증 환자라는 낙인 때문에 더 괴로워한다. 이번 병역 비리 사건으로 인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치료가 급한 환자마저 발병을 숨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2월 13일 ‘세계 뇌전증의 날’(매년 2월 두 번째 월요일)을 맞아 뇌전증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소개한다.


■100명 중 3명은 일생에 1회 이상 발작

뇌전증은 영아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층에서 발병하는 흔한 만성 신경계 질환 중 하나이다. 기원전 2000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 바빌로니아 왕국, 이집트 문헌에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오래된 질병이다. 신경계 질환 중에서는 치매, 뇌졸중 다음으로 흔한 질환이 바로 뇌전증이다. 일반인의 3%가 일생에 1회 이상 발작을 하며, 한 번 발작을 경험한 환자의 20분의 1 정도가 뇌전증으로 발전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1년 뇌전증 환자 수는 14만 4091명이었다.

이처럼 뇌전증은 오래되고 흔한 질환이지만 우리나라의 인지도는 아직 낮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사회관습이 유교적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발작과 같은 예기치 못하고 소란스러운 증상은 배척의 대상이 됐고, 이로 인해 뇌전증은 숨겨야 하는 질환으로 간주했다. 뇌전증은 치료를 빨리 시작해야 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사회적 편견은 독이 된다. 특히 소아 뇌전증은 가능한 한 빨리 조절해야 하는데, 뇌 발달에 영향을 미쳐 퇴행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뇌전증은 숨겨야 하는 병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뇌전증의 진단은 환자가 호소하는 발작 증상이 뇌전증 발작에 합당한지를 먼저 평가하고, 발작의 형태를 파악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특정 뇌전증 증후군으로 분류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서는 자세한 문진과 병력 청취, 신체 진찰, 신경학적 진찰, 뇌 자기공명영상(MRI) 등 여러 가지 검사가 필요하다.

뇌파 검사상 뇌전증파가 나타나면 뇌전증을 쉽게 확진할 수 있다. 그러나 뇌파 검사가 정상이라고 해서 뇌전증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데, 이는 뇌파의 낮은 민감도 때문이다. 첫 번째 뇌파 검사에서 뇌전증파가 관찰될 확률은 약 50% 정도이다. 그러므로 전문의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뇌파 검사를 반복 시행해야 한다. MRI는 구조적인 이상을 발견하는 데 있어 전산화단층촬영술(CT)보다 민감도와 특이도가 월등하기 때문에 뇌전증 원인 규명에 가장 선호되는 방법이다.

해운대백병원 신경과 박강민 교수는 “뇌전증은 구조적인 뇌병변뿐만 아니라, 대사성 질환, 자가면역질환,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 등 수많은 원인이 있어 치료 역시 환자 개인에 맞는 맞춤형 치료가 필요하다”며 “뇌전증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뇌전증 치료는 완치의 개념보다는 발작의 재발을 억제하거나 조절하는 완화적 치료의 개념이다”고 설명했다.


■환자 70%는 약물로 발작 완전히 조절 가능

뇌전증의 치료는 크게 약물 치료와 수술 치료가 있으며, 약물 치료가 우선이며 기본이다.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으면서 먹기 편한 약이 계속 개발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항뇌전증 약물은 20가지가 넘는다.

뇌전증은 다른 신경계 질환에 비해 치료 효과가 월등히 높아서 적절히 치료하면 발작이 완전히 조절돼 정상적인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약물을 잘 사용하면 10명 중 7~8명은 발작이 잘 조절된다. 그중 일부는 2~5년간 약물 치료 후 약을 끊어도 재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약을 끊으면 재발하기 때문에 평생 약물을 복용해야만 하는 일부 환자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약물로 발작은 잘 조절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거의 없다.

해운대백병원 신경과 박강민 교수는 “적극적인 약물 치료를 했는데도 발작이 재발하는 난치성 환자나 약물불응성 환자는 수술, 케톤식이요법, 전기자극술 등 다양한 치료로 발작을 조절한다”고 말했다.

수술 치료법은 뇌전증의 원인 병소를 제거하는 절제술, 뇌의 반쪽이 특정 원인으로 소생이 불가할 경우 반구절제술, 갑작스러운 실신이 주 증상인 경우 뇌량 절제술, 원인 병소를 찾지 못할 때 시행하는 신경조절수술(미주신경자극술, 뇌심부자극술) 등이 있다. 미주신경자극술은 절제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에 시행한다. 제10번 뇌신경인 미주신경은 뇌의 여러 넓은 영역과 연결돼 있어 특수한 전기자극을 주면 뇌전증 발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수술을 통해 전기자극발생기와 미주신경자극전극을 체내에 삽입하고, 지속적으로 미주신경을 적절히 자극해 발작의 횟수와 정도를 줄인다.

케톤식이요법은 당 성분을 완전히 소진하고 지방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약 2년간 먹는 것이다. 난치성 소아 뇌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저단백질 식단을 투여해 케토시스(지방산 대사의 부산물인 케톤체를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 상태를 만들면 경련이 억제된다는 논리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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