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어떤 아트 토크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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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에디터

미술관 관람객 증가·미술 공부 열기
‘과열’ 미술시장 조정기 들어갔지만
미술 자체에 대한 시민 관심 늘어나
일상 속 ‘미술과의 좋은 만남’ 기대

토크 1. 평범한 주말 저녁 집에서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 중 한 명이 TV 프로그램 ‘예썰의전당’ 박수근 편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질감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 그림 속 고목이 품고 있는 초록빛에서 시작해 ‘시대를 반영하는 그림’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난해 부산비엔날레에서 주목받은 1938년생 오우암 작가가 있다고 하자 가족들은 바로 이미지 검색에 들어갔다. 한국전쟁 전후 삶의 모습을 자신만의 색채로 담아낸 작품을 보며 누군가 말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그림, 작가의 경험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작품이다.” 80대 어머니까지 가세한 뜻밖의 토크에서 ‘일상 가까이 들어온 미술’의 존재를 실감했다.

미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미술시장에는 아트테크 광풍이 불었다. 아트페어나 전시장 입구에는 ‘오픈런’ 대기 줄이 늘어섰고, 뜬다 싶은 작가의 그림은 나오는 대로 사겠다는 예약 전화가 줄을 이었다. 하반기부터는 확 달라졌다. ‘그림만 걸면 팔리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뜨겁게 끓어오른 미술시장은 냉각기에 들어섰다. 이런 시장 분위기와 달리 ‘미술 자체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상승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대형 기획전을 중심으로 미술관 관람객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부산시립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은 총 7만 7203명이 관람했다. 한국 근현대 미술 대표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는 매번 회차별 관람 인원 숫자를 꽉 채웠다. 전시 막바지에는 현장 예매 대기자가 로비를 가득 메우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세계적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전도 전국 관람객을 부산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전시 개막 이후 관람객 숫자가 4만 명에 육박한다. 리움미술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전도 예매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술관 관람 열기는 유명 작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3개 기획전에 대한 관람객 반응도 뜨겁다. 특히 미술관 개관 이후 첫 어린이 전시인 ‘포스트모던 어린이’는 누적 관람객 수가 6만 3000명을 넘어섰다. 생애 처음으로 미술관 전시를 관람했다는 어르신, 보고 싶은 전시를 찾아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젊은이, 아이 손잡고 찾아오는 부모까지 과거에 비해 미술관을 방문하는 세대와 계층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토크 2. 전시를 마친 한 기획자를 배웅하는 자리였다. 전시 결과와 함께 새로운 관점을 촉발하는 미술 이야기가 나왔다. 기획자는 컨테이너선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노동 문제와 환경 문제를 다룬 작품을 본 관람객이 ‘해상운송 회사의 주주로서 책임감’을 언급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세상을 보는 작가의 시선이나 생각이 작품을 통해 보는 이에게 가 닿은 것이다. 전시는 작가 또는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관계’를 만들어낸다. 어떤 전시를 계기로 그림이 좋아지거나, 작가가 궁금해질 수 있다. 또 자신도 모르던 자기 속의 감정을 발견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모임에 동석한 이가 말했다. “어떤 시대를 우리가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시대의 향기·냄새·질감 등을 가시화한 작품을 통해 우리는 시대를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경험하는 만큼, 아는 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린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알면 더 잘 즐길 수 있다. 당장 서점만 가도 미술사 서적부터 시대·장르별 작가와 작품 해설서, 아트투어와 아트테크 가이드,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을 위한 안내서까지 미술 관련 책이 넘친다. 문화회관·문화센터의 미술 관련 강좌 참가자도 꾸준히 늘어난다. 도슨트 진행 시간이 되면 100명 이상이 몰릴 정도로 ‘작품 제대로 이해하기’에 대한 열망도 뜨겁다.

토크 3.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개막일 현장에서 만난 청소년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친구들과 같이 왔다는 한 중학생이 말했다. “완전히 이해는 하지 못해도,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어떤 느낌을 받았다.” 예술을 접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반응. 이것이 바로 미술을 즐기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색이 좋아서, 묘한 감정이 들어서 미술에 관심이 생긴다.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내 그림 취향을 발견하고 ‘내 마음에 저장’하는 작가 목록도 만들어진다. 미술관을 찾아도 좋고 가까운 갤러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도 좋다. 좀 더 적극적으로 대안공간이나 신생공간을 탐험해도 된다. 전시장 입장이 어색하다면 아트페어 현장 방문도 괜찮다. 미술계의 여러 현장. 그 어딘가에 당신이 좋아하게 될 그림과의 운명적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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