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람입니다, 고객님"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콜센터가 부산의 새로운 고용 창출 산업으로 꼽히던 때가 있었다. 부산시는 2010년을 전후해 ‘컨택센터 거점도시 부산’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수도권에 비해 임대료가 싸고 다른 지방보다 우수한 인력을 보유해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었다. 2000년대 중·후반 보험사와 통신사 콜센터가 몰려왔고 교통이 편리하고 빌딩이 즐비한 중앙로를 따라 ‘컨택 밸리’가 형성됐다. 단순히 고객 불만을 전화로 처리하는 콜센터와 차별화해 다양한 통신 수단으로 고객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택센터 개념을 강조한 것도 이 즈음이다.

부산에는 여전히 콜센터가 도심 구석구석에 존재하지만 더 이상 내세우지 않는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감정노동이 공론화되면서다. 2017년 1월에는 전주의 한 통신사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던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이 호수에 투신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고객 해지 방어 업무를 맡아 감정노동과 실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공분으로 이어졌다. 2018년에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발생 초기 서울 구로 콜센터 상담사 집단감염 사태로 열악한 근무 환경이 다시 소환됐다.

콜센터가 처음 생긴 건 1900년이다.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가 필라델피아에 세운 최초의 백화점에 콜센터를 만들었다. 그는 ‘고객은 왕이다’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원문은 ‘The customer is always right’로 ‘고객은 항상 정확하다’는 뜻인데 국내에서 ‘고객은 왕’으로 탈바꿈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콜센터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제조, 금융, 서비스업, 심지어 공공기관까지 콜센터를 통하지 않고는 소통이 어렵다.

지난주 개봉한 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가 화제다. 전주 실습생 실화가 모티브다. 사무직 일자리를 얻었다며 좋아하던 소희(김시은 분)가 콜센터의 감당하기 힘든 노동 현실에 시들어 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다. 소희의 죽음을 쫓아가던 형사 유진(배두나 분)은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텐데 그런 일을 한다고 더 무시해”라는 대사로 심장을 두드린다. 〈사람입니다, 고객님〉의 저자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콜센터는 인센티브라는 숫자에 매몰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했다. 소희 다음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불안한 마음 또한 어쩔 수 없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