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가 급한데…” 구호품 전달 막아버린 알아사드 정권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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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참사

일주일 만에 사망자 3만 명 넘어
160시간 가까이 버틴 생존자도
시리아 반군 지역 접근조차 막아
의료 지원 지체되면 더 큰 피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 발생 일주일 만에 3만 3000명 이상이 숨졌다. 지난 12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아디야만의 무너진 건물 현장에서 구조물을 절단하고 있는 구조대원. EPA연합뉴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 발생 일주일 만에 3만 3000명 이상이 숨졌다. 지난 12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아디야만의 무너진 건물 현장에서 구조물을 절단하고 있는 구조대원. EPA연합뉴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강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두 나라의 사망자 수가 3만 3000명을 넘어서 21세기 들어 6번째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자연재해로 기록됐다. 인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이미 지났지만 기적의 생환자 소식도 들려온다. 이번 지진으로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반군이 장악한 시리아 북서부는 의료 지원과 구호물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심각한 2차 피해도 우려된다.


■절망 속 실낱 같은 희망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2일(현지시간)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사망자 수가 3만 3000명 이상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튀르키예에서 2만 9600명 이상, 시리아에서 34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두 나라 관리들이 밝혔다. 지난 6일에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여러 지역의 구조 노력이 복구 임무로 전환됐다고 WP는 전했다.

암울한 전망 속에서도 기적 같은 구조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다. 튀르키예 동남부 가지안테프에서 17세 소녀가 건물 잔해에 갇힌 지 159시간 만에 구조됐다고 튀르키예 관영 아나돌루 통신이 보도했다. 튀르키예 남부 아디야만에서는 153시간 만에 두 자매가 구조됐다고 현지 하베르투르크방송이 전했다. 또한 35세 튀르키예 남성이 149시간 만에 생환하는 등 72시간으로 알려진 생존자 골든타임을 훌쩍 뛰어넘는 구조 사례가 이어졌다.

잔해에는 아직도 엄청난 수의 주민이 파묻힌 상태다. 시리아에서는 굴착기가 부족해 생존자들이 가족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땅을 파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시리아 북서부에 콜레라마저 유행할 조짐도 보여 어린이들이 특히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튀르키예에만 1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난민이 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터져나오는 막대한 요구사항도 좀처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월드비전 시리아 대응국장인 요한 무이즈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이 정도 규모의 고통과 황폐화를 본 적이 없다”며 “영향이 너무 커서 회복에 한 세대가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 발생 일주일 만에 3만 3000명 이상이 숨졌다. 지난 12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아디야만의 무너진 건물 현장에서 잔해에 갇힌 친척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주민들. EPA연합뉴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 발생 일주일 만에 3만 3000명 이상이 숨졌다. 지난 12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아디야만의 무너진 건물 현장에서 잔해에 갇힌 친척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주민들. EPA연합뉴스

■알아사드 정권의 어깃장

황폐화 속에서 수많은 구호물자가 쏟아진 튀르키예에서는 당국의 대응이 지체되는가 하면, 내전으로 이미 많은 난민이 발생한 반군 장악 시리아 북서부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구호품에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무장 반군이 장악한 북서부 지역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와 중국 등 우방국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인도적 지원을 주기적으로 막기도 했다.

유엔은 인도적 지원 제공을 방해하는 정치 세력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유엔은 손상된 도로와 보안 문제가 시리아 북서부의 구호품 전달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유엔은 이날 이들 구호 활동에서 실수를 인정했다. 유엔의 마틴 그리피스 인도지원 담당 사무처장은 “우리는 지금까지 시리아 북서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그들은 당연히 버림받았다고 느낀다”면서 “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아직 지진 피해 현장에 도착하지 않은 국제 지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 반군의 민간 구조대 ‘하얀 헬멧’의 라에드 알 살레 대표는 “유엔의 실수 인정에 대해 감사한다”면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 없이 국경을 넘는 구호 경로가 더 많이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위터에 “시리아 북서쪽의 구호품 유입을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국경 개방 승인을 기다리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면서 “의료·구호 전달을 신속하게 확대하지 못 하면 유엔은 더 많은 피를 보게 될 것이다”고 썼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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