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연두 / 박은형(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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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지 왕버들이 연두를 시동 겁니다

넌짓한 마음을 단숨에 뜯어내는 승냥이 떼 같습니다

늦으면 늦은 대로 연두를 따라붙으려

두툼하게 녹이 난 슬픔이나

생애 첫 연서의 무용한 형식에 대해 고심합니다

일몰의 긴 회랑이라면 눈부신 졸음

폐역의 늦은 당신이라면 단팥죽 한 그릇

빈 식탁이라면 먼지를 보여주는 흑백 한 문장

(중략)

전승된다면 사랑

죽음이라면 끄덕끄덕 자장가까지

저수지 너른 고독에 찔려 신접의 병상처럼 에는 것

내 마음을 따라잡는 연두였다고 중얼거립니다

- 시집 〈흑백 한 문장〉(2020) 중에서


물과 가장 가까이 있는 나무가 왕버들이다. 바야흐로 이 왕버들에도 다시 연두가 찾아오는 시기이다. 시인은 ‘연두를 시동 겁니다’라고 표현했다. 그 연두는 시인의 문장 ‘생애 첫 연서의 무용한 형식’처럼 보인다. 언제든 자연에는 선과 악이 따로 없고 고결함과 하찮음이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일몰의 긴 회랑이라면 눈부신 졸음’ 같은 넓은 고독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자연의 여왕 왕버들은 물가에서 그 존재의 가치를 더한다. 아스피린 원료로도 쓰고 나무젓가락도 만든다. 좋은 시 한 편을 읽었으니, 창가를 열어 연두를 찾아보자. 우리들 마음을 따라잡는 연두들이 출발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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