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GM 형광 물고기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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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IT업계 호황이 2000년 들어 거품처럼 꺼지기 시작했다. 파산 위기에 처한 벤처 사업가 리처드 크로켓과 앨런 블레이크에게 때마침 솔깃한 소식이 전해졌다. 국립싱가포르대 연구팀이 ‘유전자 변형’(GM)으로 밤에도 아름답게 빛나는 형광 물고기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대박’을 직감한 두 사람은 2001년 국립싱가포르대로부터 형광 물고기의 독점 판매권을 따냈다. 갖가지 빛깔의 형광 물고기 번식에 성공한 이들은 ‘글로피시’(GloFish·빛나는 물고기)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에 들어갔다. 직감한 대로 글로피시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불티나게 팔렸다.

형광 물고기가 처음부터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형광(螢光)은 말 그대로 반딧불이의 꽁무니에 있는 특정 물질이 특별한 자극을 받으면 발산되는 빛이다. 이런 형광 현상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가진 생물들이 있다. 해파리가 그렇다. 1988년 일본 과학자 시모무라 오사무는 해파리의 녹색 형광 유전자를 물고기의 체세포에 주입하면 그 물고기가 같은 형광색을 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립싱가포르대의 형광 물고기는 이를 발전시킨 것으로, 수중 환경 감시용으로 쓴다는 게 당초 목적이었다. 강과 바다의 오염 물질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물고기를 착안한 것이었다. 연구팀은 산호의 형광 유전자도 활용해 다양한 빛깔의 물고기를 선보였다.

GM 형광 물고기는 이후 여러 나라에서 연구됐다. 환경 감시용만이 아니라 신약 실험용 등 형광 물고기의 용도는 다방면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선 부경대가 2010년 처음으로 붉은빛의 형광 송사리를 개발했다. 역시 환경 감시용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었는데 관상용으로도 가능성이 점쳐졌다. 하지만 일반인에겐 공개되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그랬던 형광 송사리가 14일 부산현대미술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전시 중인 미국 출신 작가 린 허쉬만 리슨의 설치 작품 ‘무한한 동력’의 일부분으로 활용된 것이다. 작가는 처음에는 미국의 GM 관상어를 작품에 쓰려고 했으나, GM 생물에 대한 규제 탓에 한국으로 들여올 수 없어 부경대의 도움을 받아 형광 송사리로 대체했다고 한다. 여하튼 개발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는데 10여 년 만에 실체를 직접 볼 수 있게 됐으니 반가울 따름이다. 해당 전시는 오는 19일까지 ‘GM 바다송사리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다고 하니, 한 번쯤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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