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제시카법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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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부산시가 ‘제시카법’처럼 아동 범죄에 강력하게 대응할 법 제정을 국회에 청원한 때가 2009년 1월이었다. 당시 허남식 부산시장은 ‘아동 성폭력 없는 부산 만들기’ 대책 회의를 열고 “제시카법처럼 아동 성범죄를 강력히 단죄하는 법을 입법 청원하겠다”고 밝혔다.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 등 아동 범죄가 잇따르던 시기였다. 지난 1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고위험 성범죄자의 학교 주변 거주를 제한하는 제시카법 도입 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툭하면 한국에 재소환되는 제시카법은 우리 여건에 잘 맞는지가 관건이다.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당시 9세의 제시카 런스포드가 납치된 뒤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옆집에 살던 40대 남성으로 이전에도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두 차례나 체포된 전력이 있었다. 제시카의 아버지는 “내 이웃이 성범죄자인 걸 알았다면 미리 피해서 딸이 살해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성범죄자를 엄격하게 관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주의회에서 이 주장이 받아지면서 제시카법이 생겨났다. 이후 아동 성범죄자가 학교나 공원에서 2000피트(약 600m) 안에 살지 못하게 하는 제시카법은 40여 개 주로 확산됐다.

그동안 극악한 성범죄자의 출소 뒤 거주지를 둘러싼 갈등이 잇따랐다. 2020년 12월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정치권은 각종 ‘조두순 방지법’을 쏟아 냈다. 하지만 대부분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거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법안이었다. 법무부는 학교와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을 기준으로 500m 범위에서 거주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문제는 일률적으로 주거 제한을 하면 성범죄자는 대도시나 중소도시에는 거주하지 못해 지역적 편중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에는 거주할 곳이 없어 ‘서울 보호법’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사실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면 걱정이 조금 줄겠지만 근본적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의 재범 장소가 주거지 500m 이내가 절반 정도였고, 나머지는 더 먼 곳에서 발생했다는 통계도 있다.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형량을 높이고, 출소 이후 별도의 시설에 격리해서 지내도록 하는 보호수용제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병적으로 아동에게 집착하는 성범죄자는 완치될 때까지 기간 제한 없이 입원시키고 있다. ‘좋은 것은 서울로, 안 좋은 것은 서울 밖으로’로 해석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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