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시대의 얼굴, 부산근현대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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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개관을 준비 중인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개관을 준비 중인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부산근대역사관이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도서관, 기록관, 박물관 기능을 결합한 라키비움으로 꾸몄다. 식민지시대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었던 이 공간은 이후 부산미국공보원, 미국대사관, 미국문화원과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근현대 부산의 역사를 이처럼 오롯이 품고 있는 공간이 어디 있으랴. 시대와 지역의 삶이 대한해협의 거센 파고처럼 출렁인다. 3월 정식 개관을 앞두고 오늘부터 개관기념 전시 ‘부산의 책-시대의 감정, 지역의 얼굴’이 열린다. 피란수도 부산이 한국의 중심장소로 올라섰던 시대의 풍경을 담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총성 없는 전쟁, 이른바 냉전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소련의 팽창을 막고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선전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미군정 선전정책을 담당한 공보조직은 공보부(DPI)다. 여론국과 공보국 2국 체제로, 정치교육과 선전, 여론조사 활동에 주력했다. 남조선과도정부가 수립되자, 미국은 공보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독자적인 기구가 필요했다. 주한미군사령부에 설치한 공보원(OCI)이 그것이다. 〈주간신보〉와 〈농민주보〉 발간, 영화 ‘미곡(米穀) 수집’ ‘국민투표’ 제작과 상영, 강연과 강습, 도서관 운영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했다. 대민접촉 활동을 확대하기 위해 부산, 대구, 인천, 개성 등 11곳에 지역분관을 설치했다.

부산미국공보원은 전국 최초로 설립한 지역분관으로, 1947년 9월 12일 문을 열었다. 초창기에는 장서 1500권과 잡지 300권을 갖춘 소규모 도서관에 불과했으나, 점차 확대하여 다른 지역분관에서 모델로 삼았을 만큼 명성이 높았다. 월평균 방문자 수가 9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애초 삼중정(三中井) 백화점 옆에 위치했다가 1949년 5월 12월 동척 건물로 이전하여 신관을 개원했다. 도서실, 음악실, 무대, 영화실, 전시실을 두루 갖춘 문화의 산실로, 음악회와 교양강좌, 전시회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했다. 학교 강당이나 다방을 중심으로 문화예술활동을 펼치던 시절에 첨단시설을 갖춘 아트센터였던 셈이다.

부산문화예술의 성장은 예술가들의 고투 못지않게 부산미국공보원의 아메리카나이제이션 전략에 힘입은 바 크다. 역사의 우울이자 시대의 아이러니다. 입춘 지나 얼었던 강물도 풀린다는 우수를 앞둔 날이다. 이제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이 봄단장을 하고 시민들과 환하게 만난다. 한국전쟁기 고단했던 피란살이에 발간한 책들은 시대의 감정과 지역의 얼굴을 어떻게 보여줄까. 전시교과서를 실로 엮는 북바인딩 체험도 준비되어 있단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폐허를 딛고 신생의 꿈을 잃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 열정의 산물이 아니던가. 부산의 오래된 미래를 열어가는 지혜의 산실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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