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재외동포청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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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할린주의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자동차로 남쪽 40분쯤 거리에 항구 도시 코로사코프가 있다. 그 도심을 조금 지나면 높은 언덕에 망망대해 오호츠크해를 바라보며 우뚝 솟은 탑이 있는데, 바로 ‘망향의 탑’이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듯한 8.4m 높이의 이 탑이 선 곳은 1945년 광복절 당시 사할린에 끌려 온 우리 동포들이 고국의 귀국선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언덕이라고 한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이역만리 동토의 땅으로 끌려 온 우리 동포들을 챙겨 주는 나라는 없었다. 러시아는 자국민이 아니라며 외면했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일본은 더욱 모른 체했다. 멀리 떨어진 고국은 이들을 데려올 여력이 없었다. 사할린에 남겨진 동포들은 해방과 동시에 무국적자와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지금은 다행히 특별법이 제정돼 사할린 동포에 대한 법적 지원 근거가 마련됐지만, 이 단계까지 오는 데만 무려 7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사할린 동포의 맺힌 한을 얘기할 때마다 따라 나오는 게 강제로 외국에 끌려간 우리 동포들과 재외 국민을 위한 제도적인 정부 기구의 필요성이다. 해방 당시에야 그럴 여력이 없었다고 해도,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에서 당당히 세계 주요국으로 우뚝 서 대접받는 나라가 우리다. 국력의 신장과 함께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재외 국민만 무려 750만 명이다. 이 때문에 우리 동포들과 재외 국민을 위한 정책과 업무를 원스톱으로 담당하는 전담 기구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2012, 2017년 대통령 선거에 공약으로도 채택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16일 재외동포청을 신설하는 법률안이 드디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곧 본회의도 통과할 전망이어서, 20여 년 전부터 재외 국민들의 숙원이었던 재외동포청 신설이 결실을 보게 됐다. 글로벌 시대엔 현지에 자리 잡은 재외 국민들의 네트워크와 역할은 곧 국가의 역량으로 연결된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면서 본국과 연대감을 높이는 일은 앞으로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국가의 책무가 됐다.

해방 당시 사할린에 방치됐던 선대 동포들의 낙담이 어떠했을지 뒷세대로선 가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신설되는 재외동포청은 그런 선대 동포들의 한을 염두에 두면서 재외 국민들을 챙겨야 하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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