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당신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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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엄마, 박지성이 죽었어.” 아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그렇게 말했다. 박지성? 내가 아는 그 박지성? 얼마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 멀쩡히 해설까지 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나보다 나이도 적을 텐데? 인터넷에서 가짜 뉴스라도 본 거 아니야?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 있는 나를 아이가 자기 방으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어항을 가리켰다. 한 자짜리 사각 어항의 구석진 곳에 체리새우 한 마리가 뒤집힌 채 죽어 있었다. “쟤가 박지성이야?” “응.” “나머지 애들은 이름이 뭔데?” “메시, 호날두, 손흥민.”

아이가 키우고 있는 체리새우의 몸길이는 2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 그 작은 생물체들에게 각각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분간이 가능한가? 나는 죽은 체리새우를 건져내며 얘가 박지성인지 어떻게 아냐고 아이에게 물었다. “잘 보면 다 특징이 있어. 전부 달라.” 나는 죽은 박지성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생명에는 경중이 없었고, 죽은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그 이름은 내 손 위에 무겁게 얹혀 있었다.

문득 지난달에 보았던 ‘페르시아어 수업’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포로로 잡힌 유대인 질은 총살당할 위기에서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다. 수용소의 독일군 대위가 페르시아인을 발견하면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명령해 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면 동생이 있는 테헤란에 가서 평범하게 식당을 운영하며 살겠다는 꿈을 가진 대위 코흐는 질에게 목숨을 살려줄 테니 주방에서 일하면서 매일 저녁 자신에게 페르시아어 단어를 가르치라고 제안하고, 질은 살아남기 위해 그날부터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다. 그러나 기록할 펜과 종이도 없는 상황에서 매일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누적된 단어들을 모두 기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질이 그런 상황에 절망할 무렵 대위 코흐는 수감된 유대인의 명단 정리를 그에게 맡기는데, 질은 그 이름들을 보며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일에 힌트로 삼는다. 이를테면 막스(Max)라는 이름에서 M을 뺀 악스(Ax)를 ‘죽음’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변환하는 식으로.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2차 세계대전은 끝났고 독일은 패배했다. 그러나 진상 조사는 언제나 쉽지 않다. 영화의 끝부분에서도, 수용소 관련 문서들은 나치에 의해 대부분 불태워져 사라졌기 때문에 수용소의 실태 조사는 생존자의 기억에 겨우 의존하여 이루어지게 되는데, 바로 그 때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며 기억해 두었던 희생자들의 이름이 질의 입에서 호명된다. 그가 2840명의 이름을 하나씩 하나씩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이름들은 ‘수용소 희생자’로 묶이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개별성과 특별함을 가진 각각의 존재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비극의 현장에서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많은 경우 방관자와 구경꾼으로 남는다. 방관자와 구경꾼들은 쉽게 이런 말을 한다. 지겹지도 않아요? 그만 좀 합시다. 다 지나간 일이잖아요.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옵니까? 막말로, 나라 구하다 죽은 것도 아니잖아요.

이미 상처 입은 이들의 가슴에 또다시 가해지는 린치…. 막말인 줄 알면 하지 말아야 되는 거 아닌가? 모든 생명은 존엄하고, 이름 불릴 자격이 있으며, 개별적으로 아름답고 특별하다. 그런 존재들이 국가의 폭력으로, 전쟁과 재난으로, 사회적 참사와 자본주의 시스템의 결함으로 어느 순간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잃어버린 이름들을 잊지 않고 불러주는 것은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이 그들과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이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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