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는 국정과제라더니… 지역사회통합돌봄 사실상 ‘폐기’ 수순 [황혼에 만난 마지막 가족③]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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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만난 마지막 가족] 3. ‘정치’에 가로막힌 노인 돌봄

정부 예산 3년 전보다 80% 줄어
계획도 전면 변경, 기존 사업 중단
노인 의료 사업으로 전환 계획도
‘도란도란’ 1년 만에 문 닫을 위기
골목빨래방도 예산 ‘반토막’ 상황

지난해부터 같이 살게 된 부산 최초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 입주자들은 어느새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 돕는 가족이 됐다. 김보경 PD harufor@ 지난해부터 같이 살게 된 부산 최초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 입주자들은 어느새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 돕는 가족이 됐다. 김보경 PD harufor@

부산 최초의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는 문을 연 지 1년 만에 폐업을 고민하게 됐다. 정부 국정과제였던 ‘지역사회통합돌봄 사업’이 사실상 폐기되면서 국비 지원이 끊긴 탓이다.

청년이 몰리는 수도권과 달리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거나 진입을 코앞에 둔 지역에서 갑작스러운 사업 중단은 노인들을 더욱 벼랑으로 내몬다. 노인이 서로를 보살피는 부산의 ‘마지막 가족’도 대책을 마련하느라 발을 동동 구른다. 정권이 바뀌면 달라지는 일관성 없는 정책의 이면에는 지역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는 수도권의 좁은 시각이 숨어 있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편성된 지역사회통합돌봄 사업 예산은 35억 원이다. 2020년 177억 원, 2021년 181억 원, 2022년 158억 원 등 최근 3년 예산과 비교하면 약 80% 깎인 금액이다. 지역사회통합돌봄 사업은 노인 등 돌봄이 필요한 주민들이 살던 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의료, 돌봄 등 인프라를 지역사회별로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2019년 전국 16개 지자체에서 선도사업이 시작됐고, 이 가운데 부산 북구, 부산진구 등 13곳에서 노인에 집중한 노인통합돌봄 사업이 이루어졌다.

사업계획도 전면 바뀌었다. 당초 2019~22년 선도사업 실시, 2023~25년 기반 구축을 거쳐 2026년부터 사업을 전국으로 보편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선도사업 종료 이후 지역사회 통합돌봄사업을 중단하고 새로운 선도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실험은 실험일 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통합돌봄추진단 관계자는 “지역사회통합돌봄 선도사업은 지난해 말로 종료해서 올해부터는 새로운 노인 의료 관련 사업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선도사업은 실험을 하는 것이고, 예산 축소로 인한 사업 중단은 그로 인한 시행착오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4년간 지역사회에서 진행된 그 ‘실험’으로 부산에서도 ‘마지막 가족’이 탄생했다.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 골목 빨래방 ‘누구나 때가 있다’, 노인자활공동체 ‘정겨움’ 등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인정자이거나 기초생활수급자에 한해 좁게 이루어졌던 노인 돌봄의 폭을 마을 전체로 확대한 모범 사례다. 사회적 연결망을 이어 고독사를 막고, 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인프라도 들어섰다.

부산 최초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에 사는 박가을(가명) 할머니는 박형준 부산시장에게 도란도란하우스 지원을 끊지 말아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김보경 PD harufor@ 부산 최초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에 사는 박가을(가명) 할머니는 박형준 부산시장에게 도란도란하우스 지원을 끊지 말아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김보경 PD harufor@


그러나 예산이 반토막 나면서 올해부터 진행되던 모든 지역사회통합돌봄 사업은 중단되거나 축소된다. 시범사업 대상인 13개 지자체 모두 국비 지원이 끊겼다. 부산 부산진구는 지난해 12억 원에서 올해 6억 원으로 예산이 줄었고, 북구는 지난해 16억 원에서 올해 4억 원으로 예산이 줄었다. 각 지자체에서 진행하던 사업에도 차질이 생겼다.

당장 도란도란하우스에서는 운영비만 빠듯하게 남기게 됐다. 이곳의 1년 예산은 1억 1000여만 원에서 8000만 원으로 줄었다. 주택 관리, 주민 프로그램 운영 등을 담당하는 관리자 2명의 인건비 7800만 원, 1년 운영비 2600만 원, 주민 사업비 600만 원을 감안하면 이미 적자다.

복지관이 없는 부산진구 초읍동에서 도란도란하우스는 공용주택이자 주민들의 간이 복지관이 됐다. 이곳 1, 2층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노래교실, 건강체조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영양가 있는 점심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 왔다. 그러나 예산이 축소되면서 올해부터 복지관 역할은 사실상 중단될 전망이다.

예산이 반으로 줄어든 골목빨래방에서도 나들이, 공동밥상 등 주민 활동의 지원은 이제 끊긴다. 공동주택, 돌봄센터, 식사 지원 등 프로그램도 축소된다. 북구, 부산진구 모두 중단된 사업만 7개에 달한다. 김일범 복지법인 우리마을 사무국장은 “선도사업은 정규사업 편성 전 인프라를 구축하는 단계이지 실험 이후 사라지는 일몰제가 아니다”라며 “선도사업 기간이 끝났다고 사업을 종료하면 시작 단계 사업들은 그저 명맥만 유지되는 정도가 된다.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인프라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구비와 시비로 사업 예산이 겨우 충당됐지만 앞으로도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부산진구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국비가 끊긴 상황에서 시비 매칭이 쉽지 않아 올해도 시비를 받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인프라 유지를 위해 최소한 올해 수준으로 예산이 유지돼야 하지만 내년에도 이 정도 예산이 유지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통합돌봄사업으로 이제 막 ‘마지막 가족’이 된 노인들은 가족이 흩어질까 불안하다. 예산 축소 소식을 듣고 도란도란하우스의 입주자 박가을(가명·80) 할머니는 지난해 10월 박형준 부산시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부산시 정책에 만족하며 외로움도, 아픔도, 고통도 참아가며 희망이 있는 내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부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제가 되고 싶지만, 지금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 내일은 두렵습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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