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양 건물 ‘아테네 학당’, 내부엔 더 놀라운 볼거리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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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4일 문 여는 보수동 책방골목 ‘아테네 학당’
천장엔 라파엘로 명화 ‘아테네 학당’…3층엔 ‘자화상’
옛 커피 밀다원 부활·책 펼친 모양 '책빵’ 명물 예감

부산일보
다음 달 4일 문을 여는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의 새로운 복합문화공간 아테네 학당 내부. 4층 천장에 라파엘로의 명화 ‘아테네 학당’을 그려 넣었다. 건물 2~4층의 한가운데 공간을 과감하게 뚫어, 2층과 3층을 잇는 계단을 오르며 고개를 들면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 달 4일 문을 여는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의 새로운 복합문화공간 아테네 학당 내부. 4층 천장에 라파엘로의 명화 ‘아테네 학당’을 그려 넣었다. 건물 2~4층의 한가운데 공간을 과감하게 뚫어, 2층과 3층을 잇는 계단을 오르며 고개를 들면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재개발과 디지털 시대의 격랑으로 점차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모처럼 생기가 돌고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책을 매개로 한 문화 골목이자, 부산 문화의 상징이다.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와 대구 헌책방 골목 등 전국의 유서 깊은 책방 골목들은 재개발과 온라인 서점, 디지털 북의 등장에 맥을 못 추고 스러져 가고 있지만, 부산의 책방골목은 개발과 보존의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됐다. 동행의 마중물이 된 건 다음 달 문을 여는 복합문화공간 ‘아테네 학당’(부산 중구 대청로 63)이다. 오피스텔 건립을 위해 헐릴 예정이었던 보수동 책방골목의 한 건물이 책방골목의 보존 가치에 크게 공감한 한 건설사 대표의 용단에 책방골목의 부흥을 이끌 랜드마크로 탈바꿈했다. 거대한 책 5권이 책장에 꽂혀 있는 건물 외관은 이미 큰 화제가 됐고, 건설사 대표가 깊은 애정을 쏟은 내부 인테리어도 최근 마무리됐다. 아테네 학당은 다음 달 4일 문을 연다. 어떤 내부 모습으로 보수동 책방골목에 활력을 불어넣게 될까. 아테네 학당의 속을 미리 들여다 봤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인 아테네 학당 외관. 명화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티마이오스(Timaeus)'와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이 꽂혀 있는 모습이다. 정대현 기자 jhyun@ 보수동 책방골목의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인 아테네 학당 외관. 명화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티마이오스(Timaeus)'와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이 꽂혀 있는 모습이다. 정대현 기자 jhyun@
아테네 학당 4층에 올라가면 명화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고대 철학자들이 흉상으로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아테네 학당 4층에 올라가면 명화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고대 철학자들이 흉상으로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아테네 학당 4층에 있는 아테나 여신상. 책방골목의 이미지에 맞게 헌책을 다시 본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정크 아트의 대가 김후철 작가에게 의뢰해 제작했다. 아테네 학당 4층에 있는 아테나 여신상. 책방골목의 이미지에 맞게 헌책을 다시 본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정크 아트의 대가 김후철 작가에게 의뢰해 제작했다.

아테네 학당 3층에 있는 라파엘로의 ‘자화상’. 철학과 미술에 조예가 깊은 김대권 아테네 학당 대표는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 중 한 명이었던 라파엘로를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테네 학당 3층에 있는 라파엘로의 ‘자화상’. 철학과 미술에 조예가 깊은 김대권 아테네 학당 대표는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 중 한 명이었던 라파엘로를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명화 속 철학자들, 복합문화공간에 되살아났다

오피스텔 건립 대신 복합문화공간 리모델링을 결정한 김대권 아테네 학당 대표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부산 미래유산’(2019년 선정)이 된 보수동 책방골목과 조화롭고, 그 가치와 상징성에 걸맞은 리모델링 방향을 찾는 일이었다. 건물 외관은 물론 내부도 마찬가지. ‘헌책이 가진 허름하지만 푸근함…’ 그는 평소 좋아했던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을 떠올렸다. 그림 정중앙에 있는 두 인물, 고대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과 리스토텔레스는 각각 자신들의 저서인 ‘티마이오스(Timaeus)’와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을 들고 있다. 김 대표는 이 책 2권을 건물 외관에 그려 넣었다. 건물 외관에 있는 책 5권 중 3권에 표제가 있다. 한가운데 책에는 ‘Scuola di Atene-Raffaello Sanzio’(1511년)를 그려 넣어 새롭게 탄생할 복합문화공간의 이름과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를 연결 지었다. 김 대표는 “명화의 숨은 의미를 강조하고, 산만함을 없애기 위해 나머지 2권은 표제를 달지 않았다”며 “책을 쌓은 디자인도 생각해 봤지만 꽂은 디자인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김 대표는 아테네 학당 4층 천장에 ‘아테네 학당’을 그려 넣었다. 건물 외관에 가져다 썼던 ‘아테네 학당’을 내부로도 들여왔다. 천장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건물 2~4층의 한가운데 공간을 과감하게 뚫었다. 2층과 3층을 잇는 계단을 오르며 천장을 보면 명화가 눈에 들어온다. 철학과 미술을 좋아한다는 그는 라파엘로의 그림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라파엘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건축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 3대 거장이다. ‘아테네 학당’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철인, 학자들이 학당에 모여 인간의 학문과 이성의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3층에는 라파엘로의 또 다른 그림 ‘자화상’이 벽에 걸렸다. 김 대표는 “라파엘로는 당대 최고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수없이 모사하며 나름의 화풍을 만들어냈다”며 “‘아테네 학당’ 그림에 등장하는 고대 철학자들의 얼굴은 자신이 평소 존경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등 동시대 예술가나 저명 인사들의 초상을 대신 그려 넣었다. 재밌는 발상 아니냐”며 웃음 지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헤라클레이데스, 유클리드, 에피쿠로스…. ‘아테네 학당’에는 모두 54명의 고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김 대표는 복합문화공간 아테네 학당으로 끄집어낼 인물로 이 중 5명(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히타피아)을 엄선했고, 흉상으로 제작해 4층에 전시했다. 히타피아에 대해선 특별히 첨언했다. 그는 “최초의 여성 수학자이기도 했던 철학자 히타피아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 흉상으로 만들어 알리는 것도 의미 있고 재밌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테나 학당’ 그림에는 벽기둥 양쪽에 두 석상이 있다. 왼쪽은 아폴론 신, 오른쪽은 아테나 여신이다. 건물 1층 로비에는 아폴론 전신상이, 4층에는 아테나 전신상이 있다. 김 대표는 정크 아트(폐품·잡동사니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는 예술)의 대가 김후철 작가에게 전신상 제작을 의뢰했다. 처음엔 석고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지만, 헌책을 다시 본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정크 아트 쪽으로 눈을 돌렸다. 평소 로봇을 주로 제작했던 김후철 작가도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전신상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잠시 놀랐지만, 이내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아테테 학당을 ‘아테네 학당’ 자체로 꾸몄다. 그는 “전신상과 흉상, 그림에는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친절한 설명도 보탤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테네 학당 내부 벽면은 낡고 오래된 듯하지만 고전적이면서도 중후한 느낌을 준다. 전문 아트 페인팅 업체의 손길로 탄생했다. 아테네 학당 내부 벽면은 낡고 오래된 듯하지만 고전적이면서도 중후한 느낌을 준다. 전문 아트 페인팅 업체의 손길로 탄생했다.
아테네 학당 2층과 3층을 잇는 계단. 계단을 오르며 천장을 보면 라파엘로의 명화 ‘아테네 학당’이 눈에 들어온다. 2층에는 커피와 음료, 빵을 주문하는 공간과 세미나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독립 공간으로 꾸몄다. 아테네 학당 2층과 3층을 잇는 계단. 계단을 오르며 천장을 보면 라파엘로의 명화 ‘아테네 학당’이 눈에 들어온다. 2층에는 커피와 음료, 빵을 주문하는 공간과 세미나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독립 공간으로 꾸몄다.
아테네 학당의 3층과 4층을 잇는 계단은 매우 고풍스러운 느낌이 든다. 아테네 학당의 3층과 4층을 잇는 계단은 매우 고풍스러운 느낌이 든다.
아테네 학당 내부의 노란 조명과 곳곳에 달린 샹들리에는 마치 유럽의 한 건물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아테네 학당 내부의 노란 조명과 곳곳에 달린 샹들리에는 마치 유럽의 한 건물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문화 행사의 허브로… 책방골목 활력 ‘기대’

아테네 학당 내부 벽면은 헌책의 해짐을 콘셉트로 했다. 낡고 오래된 듯하지만 고전적이면서도 중후한 느낌이 든다. 전문 아트페인팅 업체에 맡겼는데, 여러 차례 붓질을 해 그런 느낌을 내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3층은 고전적이고 오래된 느낌이, 4층은 산뜻하면서도 단순한 느낌이 나도록 테이블, 의자 등을 골라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노란 조명과 곳곳에 달린 샹들리에는 마치 유럽의 한 건물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도 고풍스럽다.

아테네 학당 1층은 서점, 2~4층은 카페를 기본으로 하고, 문화 공간으로도 활용한다. 1층에는 기존 있던 우리글방, 충남서점, 국제서점 등 3개 서점이 그대로 영업 중이다. 2층에는 커피와 음료, 빵을 주문하는 공간과 독립 공간으로 꾸몄다. 독립 공간은 서재처럼 꾸미고 빔 프로젝터도 설치된다. 독서 모임, 세미나, 스터디 등이 가능하다. 행사 주제나 규모에 따라 2~4층 전체나 일부 층을 대관한다는 김 대표의 구상이다.

카페에서 판매할 시그니처 커피와 빵도 컨설팅을 받아 완성했다. 고심이 깊었던 시그니처 커피 이름은 <부산일보> 박종호 수석논설위원의 추천을 받아 ‘밀다원’으로 정했다. 밀다원은 피란 시절 광복동에 있었던 다방이다. 김동리, 황순원, 김말봉, 이중섭, 김환기 등 문인과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밀다원은 에스프레소 투샷에 물은 조금 적게 부어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의 중간 맛이다. 각설탕까지 기호에 따라 넣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커피라고 김 대표는 귀띔했다. 예전 문인들이 밀다원에서 즐겨 마셨던 커피 스타일이라고 한다.

시그니처 빵 이름은 ‘보수동 책빵’으로 정했다. 책을 펼친 모양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착안한 이름이 기발한데, 그 모양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김 대표는 시그니처 빵에 특히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아테네 학당이 등장을 준비하는 동안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벌써 긍정적인 기운이 꿈틀댄다. 김 대표는 “인근 상가가 2년 넘게 비어 있었는데, 임차인이 나타나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라며 “아테네 학당이 책방골목 활성화의 마중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책방골목 서점들은 재개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하지만 아테네 학당이 책방골목 부활의 신호탄이 됐으면 하고 기대한다. 아테네 학당 1층에 있는 충남서점 남명섭 대표도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50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킨 책방골목의 산증인이자 터줏대감이다. 남 대표는 “아테네 학당이 언론과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에는 확실히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조금씩 책방골목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최근 완성된 아테네 학당의 시그니처 커피 '밀다원'(위)과 시그니처 빵 '보수동 책빵'. 아테네 학당 제공 최근 완성된 아테네 학당의 시그니처 커피 '밀다원'(위)과 시그니처 빵 '보수동 책빵'. 아테네 학당 제공
아네테 학당 건물 1층에 있는 충남서점의 남명섭 대표는 오피스텔 건립으로 건물이 헐리면 또다시 서점의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책방 골목에 모처럼 생기가 돌고 있다”며 아테네 학당이 보수동 책방골목 부활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아네테 학당 건물 1층에 있는 충남서점의 남명섭 대표는 오피스텔 건립으로 건물이 헐리면 또다시 서점의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책방 골목에 모처럼 생기가 돌고 있다”며 아테네 학당이 보수동 책방골목 부활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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