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일은 ‘같은 문화권’으로 서로 왕래했습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니시타니 타다시 규슈대 명예교수
“한·일 민간 교류 더욱 돈독히 해야”

니시타니 타다시 규슈대 명예교수는 “고대에 같은 문화권이었던 한일은 앞으로 지역·민간간 교류 더욱 돈독히 해야 한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니시타니 타다시 규슈대 명예교수는 “고대에 같은 문화권이었던 한일은 앞으로 지역·민간간 교류 더욱 돈독히 해야 한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지난 11일 규슈국립박물관 ‘가야’ 특별전과 관련해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에서 만난 니시타니 타다시 규슈대 명예교수(무나카타시 향토문화학습교류관장)는 “5세기 왜의 기술혁신은 가야의 기술이전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1월 말 규슈국립박물관에서 ‘5세기 왜의 기술혁신과 가야’라는 주제로 ‘가야’ 특별전 기념강연회를 성황리에 열기도 했다. 500여 명이 신청했으나 좌석 제한으로 270명가량만 강연을 들었다고 한다.

저 그가 천착한, 야요이시대 일본열도의 ‘제1 도래인 시대’를 연 벼농사 전래에 대해 물었다. 이는 한반도로부터 ‘청동기시대의 기술이전’이었다.

-기후변동에 의해 벼농사가 경남 진주 대평리유적에서 일본열도로 전해졌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벼농사 전래는 ‘점’이 아닌 ‘면’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당시 기후변동은 진주에서만 일어난 게 아닐 것이다. 나는 벼농사가 중국 양쯔강 하류에서 산둥반도, 묘도열도, 라오둥반도를 거쳐 한반도로 남하해 부여 송국리에서 정착했다고 본다. 이후 전라도 마한 지역으로 확산하고 진주, 마산, 그리고 낙동강 하구를 통해 쓰시마, 이키, 북부 규슈 가라츠 경로로 일본에 전해졌다고 본다.”

-일본 고대의 3왕조 교체설 중 ‘제2 도래인 시대’인 433년 가야계가 제2왕조 닌토쿠왕조를 세웠다는 ‘강한 주장’이 있는데?

“5세기 왜의 기술혁신에 가야 도래인 역할을 컸다고 해도, 그것과 별개로 닌토쿠왕조는 일본의 독특한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고 봐야 한다. 당시 전방후원분은 새로 건너온 게 아니라 야요이시대에 뿌리를 둔 무덤양식이다. 5세기 도래인에 의한 기술 발전은 있었으나 정복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벼농사 전래, 기술혁신 바탕에는 한반도 남부와 왜의 상당히 광범하고 지속적인 ‘일상적인 교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점’이 아닌 ‘면’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에가미 나미오의 ‘기마민족 정복설’은 지금은 폐기됐다.”

그는 일본 고대 3왕조를 야마토·가와치(닌토쿠)·게이타이 왕조로 표현하면서 특히 507년 시작한 게이타이왕조는 4세기 중엽부터 오사카와 교토 사이의 자리 잡은 ‘미시마왕조’라고 했다. 그는 ‘게이타이 미시마 왕권론’이란 책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5세기 왜의 기술혁신과 400년 고구려 남정에 의한 금관가야 타격은 관계가 깊나?

“금관가야가 큰 타격을 입은 후 도래인이 일본열도로 대거 넘어왔다. 가야 도래인으로 인해 일본열도는 철 소재를 수입하던 단계에서 철을 직접 생산하는 단계로 진전한다.”

-대량의 도래인으로 볼 때 고대 한·일 관계는 어떤 관계였나?

“‘같은 문화권’으로 ‘서로 왕래했다’. 물론 문화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갔으며, 일본열도로 건너온 도래인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왜인도 가야로 건너가지 않았는가. 상호 교류 관점에서 보는 연구가 더욱 발전적이다.”

-한국에서는 ‘가야’의 다른 용례로 ‘임나’라는 용어에 민감하다.

“요즘 일본 중등교과서에도 ‘임나’는, 예외적 소수를 제외하곤 거의 나오지 않는다. 30년 전 도쿄·후쿠오카·교토의 가야 전시 때, 문부성에서 ‘임나’를 들먹인 적이 있으나 연구자들이 반대하며 ‘가야’란 용어를 썼다. 임나일본부설 운운하지만, 그것은 함안 안라국(아라가야)에 일시적으로 머문 일본사절단 시설인 ‘안라왜신관(安羅倭臣館)’으로 봐야 한다.”

-규슈와 부산·경남은 역사적으로 매우 가깝다.

“한·일은 지기로서 국가간 관계도 중요하지만 지역간, 민간간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나가야 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백제 무녕왕 탄생지 가카라시마(사가현 카라츠)와 공주 사람들이 상호 교류하는 것이 좋은 예다. 매년 6월에 행사를 치르고 있다. 이번 규슈 ‘가야’ 특별전에서만 특별히 도래인 전시를 여는 것도 그 예다. 후쿠오카시에 ‘사와라’(早良) 구가 있다. ‘사와라’는 양산의 옛 지명 ‘삽량’에서 왔다. 6세기 양산에서 온 도래인 후손이 나중에 사와라 장관이 됐던 것이다. 이런 예도 민간 교류로 살려나갈 수 있다.”

무나카타(일본)=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