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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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 춤패바람 대표·예술학 박사

2030부산월드엑스포범시민유치위원회 2023년 정기총회가 박형준 부산시장, 하윤수 부산시교육감, 장인화 부산상의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일 아스티호텔에서 열렸다. 정종회 기자 jjh@ 2030부산월드엑스포범시민유치위원회 2023년 정기총회가 박형준 부산시장, 하윤수 부산시교육감, 장인화 부산상의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일 아스티호텔에서 열렸다. 정종회 기자 jjh@

집에 귀한 손님을 들인다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대청소도 해야 하고 세간도 정리해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일은 꼭 손님 때문이 아니더라도 종종 벌이는 일이다. 깨끗하게 정돈하는 일쯤은 몸만 잠깐 쓰면 된다. 해 놓고 나면 성취감에 기분도 좋아진다.

손님맞이가 힘든 이유는 정신적 피로 때문이다. 손님의 시선에서 집을 닦고 꾸며야 하는데, 내가 다른 사람의 속을 알 수 없으니 개운하게 손을 털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손님이 오는 시간이 다가오면 공연히 두리번거리게 되고, 초인종 소리에 흠칫하게 되고, 문을 열어 주는 순간에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된다.

4월 엑스포 실사단 부산 방문

무엇을 보여 줄 것인지 고민

부산은 개방성·친화력의 도시

진심과 정성 다한 어울림 강점

부산엑스포는 그런 대동의 마당

이런 정신적 피로를 더는 방법은 돈을 들이는 것이다. 값비싼 가재도구나 장식을 사들이고 평소 먹지 않던 귀한 음식을 내놓으면 손님의 시선을 뺏을 수 있게 된다. 손님은 내가 보여 주고 싶은 것에 집중하게 될 테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뚫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덜 수 있다.

물론 결산은 나의 몫이다. 값비싼 음식이라고 해서 배 속에 더 오래 머무는 것도 아닌지라, 손님이 떠난 후 남은 음식을 벅벅 긁어 먹으면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손님 덕에 좋은 세간은 장만하지 않았냐고? 그러나 나의 필요로 선택된 세간이 아니었기에 그런 것들은 얼마 못 가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뒷전으로 밀려날 운명이 된다. 이쯤 되면 원초적인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애초에 손님을 부르지 말았어야 했나? 이렇듯 손님을 불러들여 나를 보여 주는 일은 힘겨울뿐더러 심지어 공허하기까지 하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제 곧 4월이면 2030 세계엑스포 실사단이 부산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는 바깥으로 찾아가서 부산을 알렸지만 이제 손님이 찾아온다. 그냥 마실 삼아 빙 둘러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밖에서 뱉었던 말들을 꼼꼼히 확인하러 온다. 기회는 한 번뿐인지라 다시 불러 모을 수도 없다. 몸의 모든 근육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뭘 보여 줘야 하나?

우리는 ‘보여 주기식 행사’라는 말을 종종 쓴다. 일을 꾸림에 있어 나의 필요보다 타인의 만족을 중심에 놓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겪은 손님맞이 체험에서 느낄 수 있듯이 ‘보여 주기식’은 나의 정신건강을 지키려는 생리적 차원의 반응이기 때문에 그 유혹은 쉽사리 떨쳐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결국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다.

문제의 사달은 나와 너를 나누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나와 너는 다르고, 너에게 힘이 있으니 나는 너에게 맞춰지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뭘 내놔야 상대가 만족할지 불확실하다. 이때는 세계인 모두에게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는 돈을 살짝 보여 주면 된다. 이 돈을 부산에 발라 놓고 꾸미면 된다. 하지만 이게 먹히기 힘든 노릇인 게, 우리의 경쟁자인 사우디는 돈이 많아도 너무 많다.

보여 주기가 안 되면 어울릴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환대’의 미학이 있다.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려는 풍습은 세계 공통이지만 우리 환대의 핵심은 진심과 정성에 있다. 그리고 진심과 정성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함이 아니라 어울림을 향한다. 이 어울림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크게 어우러지면 대동(大同)이 된다. 대접은 손님이 문지방을 넘어서야 하지만 대동은 마당에서 이루어진다.

역사적으로 부산의 강점이 돋보이는 순간은 부산이 마당의 역할을 할 때였다. 한국전쟁 때는 전국의 피란민이 모였고 산업화 시기엔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모였다. 부산은 문지방 안에 갇힌 내향성 도시가 아니라 바깥으로 열린 공간이다. 그래서 부산은 세계를 품을 준비가 이미 된 너른 마당이다. 그 공간에 생명과 활기를 부여하는 것은 개방성, 친화력, 그리고 공감과 배려다. 그것이 부산의 마음이고 부산의 문화적 강점이다. 엑스포 유치 노력은 바로 그 부산의 마음을 살리고 키우는 게 중심이다. 그 중심을 세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세계시민으로 한발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래야 설사 유치에 실패하더라도 크게 얻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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