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전 속 쌓이는 주검, 잿더미 된 도시, 멀어진 종전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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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 1년

러 전력 97% 동부 전선 배치 압박
서방 지원, 우크라 항전에 교착화
전쟁 장기화로 인명 피해 늘어나
협상 타결 난망 전황 예측 불투명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전쟁은 소모전 양상으로 고착화됐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전쟁에서 전사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묻힌 하르키우의 한 공동묘지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빼곡하게 꽂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전쟁은 소모전 양상으로 고착화됐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전쟁에서 전사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묻힌 하르키우의 한 공동묘지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빼곡하게 꽂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24일 ‘특별군사작전’이라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 러시아의 침공에 수일 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점령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서방의 지원을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는 1년 동안 러시아에 결사 항전했다. 우크라이나는 일부 러시아 점령지를 탈환하는 성과도 거뒀지만, 전선에서는 소모전이 고착화됐다. 올해에도 전쟁이 이어질지, 아니면 휴전 또는 종전 형태로 전쟁이 종료될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전황은

23일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1500km에 이르는 전선이 형성돼 있다. 긴 전선 가운데 최대 격전지는 우크라이나의 동부 전선이다. 지난달 러시아가 솔레다르를 점령한 뒤 바흐무트로 향하는 통로가 뚫렸고,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주요 목표로 삼은 동부 바흐무트에 집중 공격을 퍼붓고 있다. 바흐무트가 돈바스 점령을 위한 핵심 거점이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에 3월까지 돈바스를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다. 러시아군은 전체 병력의 97%를 우크라이나에 배치하고 동부 전선을 압박하고 있지만 큰 진척이 없다.

바흐무트 등 동부 전선 지역은 전쟁 탓에 대부분 잿더미로 변했다. 마을 건물이 붕괴되면서 폐허가 됐고, 땅에 떨어진 포탄 때문에 거대한 웅덩이도 곳곳에 생겼다. 오랜 시간 벌어진 전투 탓에 녹초가 된 군인들이 길고 좁은 참호 속에 누워 대기 중인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러시아 기습 vs 우크라 저항

전쟁 1년을 시기별로 분류하면 우크라이나가 키이우를 지켜 낸 지난해 2~3월, 러시아가 점령지를 꾸준히 확대한 지난해 4~7월,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반격에 나선 지난해 9~11월 등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개전 초 러시아군은 압도적인 기갑 전력을 앞세워 우크라이나 전역을 빠르게 돌파했고 순식간에 키이우 외곽에 도달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엄호나 보호 조치 없이 이동하는 러시아군 전차와 장갑차를 공격용 드론과 미제 재블린 미사일로 격파했다. 결국 러시아군은 막대한 피해를 낸 채 한 달 만에 키이우에서 후퇴했다.

러시아는 5월에는 동남부 마리우폴을 함락해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선을 연결하는 점령지를 완성했고, 7월에는 루한스크주까지 완전히 점령했다. 우크라이나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9월 들어 동북부 하르키우주를 대부분 수복하며 일거에 전황을 뒤집었다. 11월에는 남부 요충지 헤르손까지 수복하며 키이우 수성 후 최대 전과를 챙겼다.


■막대한 희생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은 러시아를 규탄하며 우크라이나에 무기 등을 지원했다. 유럽연합(EU) 위원회·이사회 등의 자료를 보면 지난달 15일까지 미국이 군사적·인도적 지원 등으로 우크라이나에 731억 유로(100조 원)를 지원했다. EU 내 각 국제기구와 기업이 350억 유로(48조 원), 영국은 83억 유로(11조 4000억 원)를 각각 보냈다. 독일도 61억 유로(8조 4000억 원)를 보탰다. 특히 미국과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최신식 전차도 지원할 예정이다. 반면 러시아에는 각종 경제 제재를 부과해 전쟁 수행 능력 약화를 꾀했다.

서방 지원으로 전투력을 끌어올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인명 피해 규모도 불어났다. 지난달 초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개전 후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6919명이 숨지고 1만 107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군 피해는 더욱 막대하다. 최근 미국과 서방 전문가들이 추산한 러시아군 사상자는 적게는 10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에 달한다. 1년간 사상자가 20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미군 사상자(약 2만 5000명)의 4~8배 수준인 셈이다.

■전쟁 종식? 장기전?

협상에 대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최소 요구사항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점령지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점령지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현 상황에서 전쟁이 멈춰 우크라이나가 한반도처럼 분단될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왔으나 우크라이나는 강하게 부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누구도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바람에 전쟁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더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미국 싱크탱크들은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의 경제가 예상보다 덜 피해를 봤고 푸틴 대통령의 권력도 공고해 러시아가 앞으로 최소 1~2년은 더 전쟁을 끌어갈 역량이 충분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3대 핵전력 증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해 핵전쟁 공포 분위기도 조성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협상을 통한 평화를 원하지 않으며 전장에서 결판을 내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올봄 러시아가 대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전쟁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도 예단하기 힘들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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