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하의 월드 클래스] 안타키아와 바흐무트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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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

지난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폐허가 된 지역은 아마겟돈(인류 멸망 최후의 전쟁터)을 방불케한다. 지진 발생 17일 만에 사망자가 4만 8000명을 넘어섰다. 아직도 현지에서 시신을 수습 중이라고 하니 희생자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절망 속에도 한 줄기 희망은 전 세계에서 구조대와 구호물자가 쇄도한다는 사실이다. 역대 최대 규모로 꾸려진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는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를 도우려고 지체 없이 달려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립했던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중국도 구조대를 급파했다. 전쟁으로 여념이 없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진은 앙숙이던 국가들의 해빙 무드도 조성했다.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튀르키예와 오랜 기간 갈등했던 그리스는 튀르키예에 구조대 파견 등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그리스 구조대는 안타키아의 폐허에서 3명의 목숨을 구했다. 이들이 귀국할 때 이스탄불 공항에서는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는 가슴 뭉클한 장면도 연출됐다.

그런데 다소 불편하고 모순된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 북동쪽으로 1300여km 떨어져 있는 도시로 가 보자. 거리마다 무너져 내리고 부서진 건물로 가득 찼다. 길바닥에는 잔해가 뒹굴고 있다. 간단한 소지품을 챙긴 주민들은 서둘러 집을 떠났다. 대체적으로 안타키아와 비슷한 풍경이다. 지진 때문일까. 아니다. 여기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피말리는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도시 바흐무트다.

오늘은 러시아가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 국방부는 개전 이래 20만 명의 군인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튀르키예 지진 사망자 수를 고려하면 이런 강진이 3번은 더 일어나야 나오는 피해 규모다.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군인 뿐이겠는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 숨진 민간인 711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구 한 쪽 지진 피해 지역에서는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하겠다고 구조대원들이 집결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인간과 인간이 가공할 무기를 들고 서로를 죽이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간이 만든 재난은 자연 재난에 견줘 결코 위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단 인간의 선택에 따라서 죽음의 땅이 되거나 생명을 구하는 곳이 될 수 있다는 게 차이다. 두 도시, 안타키아와 바흐무트를 통해 한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선택에 따라 생명을 단번에 죽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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