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욕탕 등 화재 대피용 가운 비치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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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가려 대피 빠르게” vs “정신 없는데, 효과 떨어져”

창원소방 39개 탈의 시설에 요청
“주변 시선 피하고 질식도 방지”
업소에 구입 부담·자율 맡겨 허술
“탁상행정 전형, 차라리 방독면을”

목욕탕 내부 모습. 기사와 관련 없음. 부산일보DB 목욕탕 내부 모습. 기사와 관련 없음. 부산일보DB

소방당국이 목욕탕 등 탈의 시설에 ‘목욕가운’을 비치해 달라고 당부하고 나섰다. 화재 발생 시 알몸을 가려 신속한 대피를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 대피 상황에 도움이 될지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전액 사업자 자부담으로 자율에 맡겨져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창원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10일 소방청에서 사우나, 수면실(방), 수영장 등에 피난 취약자의 신속한 대피를 위해 임시(목욕)가운 비치를 홍보하라는 공문이 내려옴에 따라 창원소방은 최근 목욕탕·수면방·안마시술소 등 39개(등록 업장) 다중이용업소에 목욕 가운 비치를 당부했다.

목욕 가운 비치는 불이 나도 주변 시선을 의식해 알몸으로 선뜻 대피하지 못하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됐다. 목욕 가운은 몸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며 출입구 등 눈에 띄는 곳에 비치한다. 신속하게 착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열 방지 등 특별한 기능은 없다. 가격은 1만~2만 원 정도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품이다.

소방당국은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등을 예로 들며 목욕 가운 정책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2017년 12월 제천시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나 29명이 사망하고 36명이 다쳤다. 당시 비상구를 통해 대피한 이들 중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사망자 중 20명이 여탕이 있는 2층에서 발견됐다. 또 목욕 가운으로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를 피할 수 있다는 논리도 폈다. 지난해 전국의 화재 사망자 343명 중에서 연기·유독가스 흡입 사례는 무려 221명, 64.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원소방본부 관계자는 “목욕탕 등은 밀폐된 공간으로 위험성이 높다. 화재 대피 과정에서 목욕 가운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소 1차원적인 정책에 소방 안팎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뒤따른다. 10여 년째 구급대원으로 활동 중인 A 씨는 “가운보다 차라리 방독면을 비치하는 게 낫겠다”고 꼬집었다.

예산도 문제다. 소방청이나 각 지역본부에 가운 구비를 위한 예산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창원소방은 사무관리비에서 100만~200만 원을 들여 팸플릿 1000부를 제작·배부하는 홍보 활동을 벌일 뿐 실제 목욕 가운은 업장에서 알아서 마련해야 하는 실정이다. 업장 규모에 따른 가운 개수 기준과 실효성 검증 과정도 별달리 없고, 허가받지 못한 시설은 소방 관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도 구멍이다.

이선정(35·경남 창원시) 씨는 “그(화재) 상황에서 가운을 찾아 입고할 정신이 있으면 내 옷을 걸치고 나가겠다”면서 “대피가 좀 추하면 뭐 어떠냐, 일단 살고 봐야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라고 비판했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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