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이모’가 건네준 ‘도라지물’ 마신 뒤 15시간 혼절… 깨보니 엄마·누나 이미 숨져”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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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양정 모녀 사망사건서 생존한 10대 아들 증언
손녀딸과 함께 찾아와 ‘몸에 좋은 주스’라며 마실 것 강권
누나 친구도 “ 친구가 ‘너무 어지럽다’ 메시지 보내” 증언
피고인은 “약물 먹이지도, 살해 하지도 않았다”

부산지법 청사. 부산일보DB 부산지법 청사. 부산일보DB

지난해 추석 연휴 부산 양정동의 한 빌라에서 발생한 모녀 사망사건(부산일보 지난해 9월 14일 자 11면 등 보도)과 관련해 유일하게 살아남은 10대 아들이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그는 이웃이었던 피고인이 건넨 ‘도라지물’을 마시고 15시간이나 잠에 들었고, 눈을 떠보니 어머니와 누나가 모두 살해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태업)는 지난 27일 오후 일명 ‘양정동 모녀 사망사건’의 첫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모녀의 이웃집에 살던 50대 여성 A 씨를 살인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날은 살해된 여성의 아들 B(15) 군이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교복을 입고 법정에 선 B 군은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9월 12일 집에 찾아온 A 씨에게 문을 열어줬다. A 씨는 자신의 어린 손녀딸과 함께 이웃집을 찾아왔으며, 이전에도 3차례 정도 집을 방문한 적이 있기에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A 씨는 B 군에게 ‘몸에 좋은 주스’라며 도라지물을 마실 것을 강권했다. 본인과 손녀딸은 이미 집에서 마시고 왔다고도 했다. 연한 보라색을 띠던 이 물은 사실 A 씨가 평소 복용하던 정신과 약물을 갈아서 만든 것이었다.

A 씨는 2015년 7월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는데, 일정한 직업이 없어 월세나 생활비, 병원비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검찰은 A 씨가 귀금속 등 금품을 가로채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B 군은 이 물을 마신 뒤 A 씨의 손녀딸과 잠시 놀아주다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평소 오전 2~3시에 자던 B 군은 약물에 든 수면제 등 성분 탓에 오후 9시가 조금 넘어 잠에 들었고 이튿날 낮 12시까지 깨어나지 못했다. B 군이 어지러움을 참아내며 자신의 방에서 나왔을 땐 이미 어머니와 누나가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검찰은 B 군이 잠든 뒤 B 군의 어머니와 누나가 차례로 귀가했고, A 씨가 이들에게 약물을 먹여 잠에 빠뜨린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A 씨는 끈이나 둔기 등을 이용해 이들 모녀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집에는 애완견을 위한 CCTV가 설치돼 있었는데 사건 당시에는 누군가에 의해 선이 뽑혀 있었다.

B 군 누나의 친구도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B 군 누나가 살해 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SNS 메시지를 나누던 친구였는데, 당시 ‘몸에 좋은 주스라고 해서 먹었는데 너무 어지럽다’는 내용을 보냈다. 평소와 달리 메시지에 오타도 상당히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A 씨는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A 씨 측 변호인은 “그런 약물을 먹인 적도, 살해를 한 적도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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