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처럼 '새콤·달콤·상큼'…부산 다대포서 만난 '딸기막걸리' [술도락 맛홀릭] <5>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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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락 맛홀릭] <5>
부산 '올빚찬주' 양조장, '올빚베리' 딸기막걸리


'올빚찬주' 양조장 박미화 대표가 1년의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딸기막걸리 '올빚베리'. 인공 향료를 쓰지 않고 진짜 딸기로만 향을 낸다. '올빚찬주' 양조장 박미화 대표가 1년의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딸기막걸리 '올빚베리'. 인공 향료를 쓰지 않고 진짜 딸기로만 향을 낸다.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울경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며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낙조로 유명한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 입구에 가면 3대째 이어져 온 주점 ‘할매집’이 있다. 1979년부터 1대 시할머니가, 뒤를 이어 2대 시어머니도 손수 술을 빚었다. 이름조차 없던 할매집 동동주는 3대째에 이르러 완전히 달라졌다. 변화를 이끈 주인공은 MZ세대 ‘며느리’이다.

■딸기, 막걸리에 빠지다

사하구 다대동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 2층. 통유리 안으로 묘한 풍경이 비친다. 부드러운 파스텔톤 타일과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보면 카페 같은데, 창가엔 대형 스테인리스 통이 줄지어 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봄바람처럼 은은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술이 익어 가는 내음이다.

공간의 주인장인 박미화(38) ‘올빚찬주’(옛 순진도가) 양조장 대표는 빨강·노랑·하양 뚜껑의 막걸리를 내놓으며 취재진을 맞았다. 셋 중 빨간 뚜껑에 유난히 눈길이 간다. 라벨도 핑크빛, 내용물도 핑크빛이다. 박 대표가 1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딸기막걸리 ‘올빚베리’이다.

“제가 ‘알쓰’(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을 일컫는 ‘알코올 쓰레기’의 줄임 말)여서 소주 같은 독한 술은 못 마셔요. 술내 안 나는 순한 술을 좋아하다 보니 제 입에 제일 맛있는 술을 만들었죠.”

결혼 전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한 박 대표는 20대 시절부터 시어머니 장사를 도우며 술 만드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밥으로 먹는 쌀이 술로 변하는 게 마냥 신기했던 그는 10여 년이 흐른 지금, 냄새만 맡아도 술 익은 정도를 알아맞히는 수준이 됐다.

부산 사하구 다대동 한 아파트단지 상가에 위치한 '올빚찬주' 양조장. 통유리 너머로 발효조가 보인다. 부산 사하구 다대동 한 아파트단지 상가에 위치한 '올빚찬주' 양조장. 통유리 너머로 발효조가 보인다.
발효조 안에서 딸기와 함께 익어 가고 있는 '올빚베리' 딸기막걸리. 발효조 안에서 딸기와 함께 익어 가고 있는 '올빚베리' 딸기막걸리.

올빚찬주의 대표작이자 가장 최근에 개발한 올빚베리는 박 대표가 가장 아끼는 술이다. 가게 손님이 많은 봄·여름·가을에는 한 달에 2000병씩 팔린다. 온라인 판매 없이 순수하게 주점 등 오프라인으로만 판매되는 양이다. 전문가들도 맛을 인정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2020년, 2021년 연속으로 탁주 부문 ‘대상’(공동)을 받기도 했다.

박 대표는 인공 향료를 넣지 않고 진짜 딸기로만 향과 맛을 낸다. 딸기 함량을 탁주의 기준 한도인 20%까지(초과하면 ‘과실주’로 분류)로 가득 채운다. 간간이 씹히는 딸기 씨도 재밌는 식감이다.

“처음엔 무턱대고 딸기를 많이 넣었는데 술내도 많이 나고 제가 생각했던 맛이 아닌 거예요. 딸기 넣는 시점과 양을 조절하면서 최대한 향과 맛을 살리려고 정말 노력했어요.”

올빚베리를 유리잔에 따라 향을 맡으니, 딸기 느낌이 강하진 않다. 그런데 한 모금 마시자 입 안에서 딸기의 향미가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막걸리 입문자에겐 부담 없고, 독한 술에 익숙한 애주가라면 딸기주스처럼 여길 맛이다.

박 대표는 맛과 향 못지않게 외양에도 신경을 썼다. 핑크빛을 내기 위해, 고두밥에 ‘홍미(紅米)’를 섞어 딸기 느낌을 한층 살렸다. 라벨 디자인도 MZ세대 감성에 맞춰 귀엽게 수정했다.

박미화 대표가 양조장에서 올빚베리를 소개하고 있다. 박미화 대표가 양조장에서 올빚베리를 소개하고 있다.
딸기막걸리에 어울리는 핑크빛을 내기 위해 홍미를 섞어 쪄낸 고두밥. 딸기막걸리에 어울리는 핑크빛을 내기 위해 홍미를 섞어 쪄낸 고두밥.

■전통, 변화를 응원하다

‘올바르게 빚어 가득 채운 술’. 올빚찬주 양조장의 시작은 201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할매집 뒤쪽 부엌 좁은 공간에서 술을 빚던 박 대표는 남편과 상의 끝에 가게와 양조장을 분리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지금의 자리 인근에 5평짜리 공간을 마련하고 양조장 이름을 ‘순진도가’라 지었다. 시할머니(순희), 시어머니(순자), 남편(진만)의 이름을 따 박 대표가 작명했다.

“돌이켜 보면 진짜 멋모르고 차린 것 같아요. 5평 이상이어야 허가가 난다고 해서 이틀 정도 알아보고 그냥 5평짜리 공간을 구한 거거든요.”

양조장을 차린 뒤 술만 잘 빚으면 될 줄 알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관련 법에 따라 챙겨야 할 서류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물어볼 데도 마땅치 않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순진도가란 명칭도 순탄치 않았다. 비슷한 이름의 양조장이 있어 3년 넘도록 상표 등록이 안 됐다. 고민 끝에 지난해 5월께 지금의 자리로 확장 이전하면서 양조장 이름도 바꿨다.

규모를 키웠다곤 해도 여전히 15평 정도의 소규모 양조장이다. 돈을 벌 때마다 하나씩 장비를 갖춰, 현재는 몇몇 발효와 제성 단계에서 기계를 활용한다.

“처음엔 무조건 손으로 술을 빚어야 맛있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하지만 더 일정한 맛을 내고, 더 길게 가기 위해 생각을 바꿨죠.” 박 대표는 “하나씩 설비를 갖추어 가는 재미도 있다”며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올빚찬주의 막걸리들. 왼쪽부터 올빚베리(딸기막걸리), 올빚찹쌀(찹쌀막걸리), 올빚곡주 5도. 올빚찬주의 막걸리들. 왼쪽부터 올빚베리(딸기막걸리), 올빚찹쌀(찹쌀막걸리), 올빚곡주 5도.
올빚베리 빛깔만 보면 딸기우유 혹은 딸기주스 같다. 자세히 보면 딸기 씨를 찾을 수도 있다. 올빚베리 빛깔만 보면 딸기우유 혹은 딸기주스 같다. 자세히 보면 딸기 씨를 찾을 수도 있다.

올빚찬주에는 올빚베리 말고도 3가지 술이 더 있다. 찹쌀로만 빚은 막걸리인 ‘올빚찹쌀’과 과거 시할머니·시어머니표 술을 개량한 ‘올빚곡주’ 5도·8도 등이다. 올빚곡주 8도는 유일하게 두 번 빚은 이양주이다. 한 달 넘게 숙성하고 월 70병밖에 생산하지 않아 웬만해선 맛보기 힘들다.

올빚곡주 5도는 예전 할매집 동동주가 뿌리지만 맛은 확연히 다르다. 예전 술이 산성누룩을 써 산미가 강한 반면, 올빚곡주 5도는 다른 누룩을 사용해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여기에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더해 좀더 대중적인 막걸리로 개발한 게 찹쌀막걸리인 올빚찹쌀이다.

가업을 물려받았지만, 수십 년 동안 내려오던 전통의 술맛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시어머니의 평가는 어떨까. “그동안 술 빚느라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술을 안 드시는데, 얼마 전 올빚곡주(5도) 맛을 보셨어요. ‘너무 맛있다’며 칭찬해 주시는데 정말 감동이었죠.”

■‘새콤달콤’ 딸기막걸리와 어울리는 맛은…

앞으로 박 대표의 목표는 신제품 출시도 사업 확장도 아닌 품질이다. 전통 누룩을 쓰는 만큼 ‘주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온라인 판매다. 현행법상 지역특산물을 사용한 ‘지역특산주’가 아니면 온라인에서 술을 팔 수 없다. 소규모 양조장인 올빚찬주는 그때그때 조금씩 재료를 사서 빚기 때문에 해당이 안 된다.

“저처럼 막걸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소규모 양조장을 차리는 사례가 앞으로 많아질 거예요. 온라인 판매 기준이 완화돼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전통주를 좀 더 편하게 구입해서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올빚찬주의 작은 규모를 보고 양조장 창업에 자신감을 얻어가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머지않아 부산 곳곳에서 소규모 양조장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 입구에 있는 주점 '할매집'. 박미화 대표의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에 이어 남편이 3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 입구에 있는 주점 '할매집'. 박미화 대표의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에 이어 남편이 3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할매집의 대표메뉴인 삼합과 해물어묵탕, 땡초부추전(오른쪽부터). 매콤한 맛이 딸기막걸리의 새콤달콤함과 잘 어우러진다. 할매집의 대표메뉴인 삼합과 해물어묵탕, 땡초부추전(오른쪽부터). 매콤한 맛이 딸기막걸리의 새콤달콤함과 잘 어우러진다.

올빚베리 딸기막걸리의 주 판매처는 박 대표의 남편이 운영하는 ‘할매집’이다. 당연히 할매집 안주와 잘 어울린다. 대표메뉴는 문어·수육·야채무침과 쌈이 조합된 ‘삼합’. 특히 문어는 다대포 앞바다에서 통발낚시로 직접 잡아 올린 자연산이다.

칼칼한 국물과 어우러진 해물어묵탕도 추천 메뉴다. 게·조개 등 자연산 해물과 부산어묵·쌀떡이 들어간 조합이 푸짐하다. 땡초가 들어간 매운 부추전도 궁합이 맞다.

올빚베리의 새콤달콤함은 매운 맛뿐만 아니라 기름진 음식의 느끼함도 덜어 준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부산지역 족발집과 양고기 식당에서도 딸기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일부 전통주점과 전통주 보틀숍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첫맛은 상큼, 끝맛에서 알코올 기운이 살짝. 기분 좋은 취기를 원하는 입문자용 막걸리.”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되게 자연스러운 과일 막걸리 느낌. 샤베트처럼 얼려서 시원하게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딸기 향은 별로 안 난다. 색깔은 딸기우유인데, 달달함보다는 새콤한 딸기 맛을 강조한 듯.”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새콤달콤 자연스러운 딸기 맛이라 가볍게 즐기기 좋다. 귀여운 라벨도 20~30대 취향 저격.”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완숙된 딸기라기보다는 딸기가 익어가는 과정에서 맡을 수 있는 풋풋한 향이 느껴지며, 단향과 함께 새콤한 향이 약하게 올라온다. 딸기 향의 강도는 전반적으로 라이트한 느낌. 맛은 (술꾼 입장에선) 마치 딸기 음료처럼 가볍게 넘어간다. 알코올 도수도 크게 느껴지지 않고 적당한 새콤달콤함이 있어,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분들도 즐기기 좋겠다."

-제품명 : 올빚베리(딸기막걸리)

-양조장 : 올빚찬주(옛 순진도가·부산 사하구)

-내용량 : 75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쌀·홍미·딸기·누룩·정제수·효모·감미료 등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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