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밀정 나카무라 건물, 통제영거리 복원 '발목'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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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밀고 '옛 중촌상점'
보상금 이견에 수용 실패
청남루 없는 ‘반쪽 복원’ 위기

삼도수군통제영 남문이자 통영성 정문 역할을 한 청남루 복원 부지를 차지한 옛 금강제화 건물. 이 부지와 건물 수용이 안돼 실물 복원이 중단된 상태다. 그런데 최근 이 건물이 일제강점기 통영지역 독립운동자 2명을 사지로 내몬 일본인 밀정이 운영한 상가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김민진 기자 삼도수군통제영 남문이자 통영성 정문 역할을 한 청남루 복원 부지를 차지한 옛 금강제화 건물. 이 부지와 건물 수용이 안돼 실물 복원이 중단된 상태다. 그런데 최근 이 건물이 일제강점기 통영지역 독립운동자 2명을 사지로 내몬 일본인 밀정이 운영한 상가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김민진 기자

경남 통영시가 국비 등 180억여 원을 들여 조성하기로 한 ‘통제영거리’가 반쪽짜리 복원에 그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핵심 시설인 ‘청남루’가 토지 보상 문제로 실물 복원이 요원해진 탓이다. 여기에 문제의 땅에 선 건물이 일제강점기 통영의 독립운동을 이끈 ‘삼열사’ 중 2명을 사지로 내몬 밀정의 아지트였다는 주장이 더해지면서 복원을 놓고 논쟁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28일 통영시에 따르면 통제영거리는 조선시대 경상·전라·충청 수군의 본영인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와 문화를 두루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2010년 기획됐다. 통제영 남문으로 통영성 정문 역할을 한 청남루를 복원하고 벅수(통영 장승) 광장과 임진왜란 때 군수품을 자체 수급하려 설치한 통제영 12공방을 재현하는 게 핵심이다.

세병관(국보 제305호)을 중심으로 복원이 완료된 삼도수군통제영과 연계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지난해 5월 문을 연 이래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시가 핵심 시설인 청남루의 토지 보상금을 놓고 소유주와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서 사실상 부지 수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홍보관과 체험관 역시 내부 콘텐츠 없이 텅 비어 있다. 지하 2층 202면 규모 주차장이 통제영 거리의 전부가 된 셈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시는 체험관 활용 계획을 공개하면서 사업비 16억 원을 들여 최신 미디어아트로 청남루를 구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남루 실물 복원 실패로 통제영거리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궁여지책으로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향토사학계는 통영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선 실물 복원이 필수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통제영거리 조감도. 부산일보DB 통제영거리 조감도. 부산일보DB
핵심 시설인 청남루를 빼고 조성된 통제영거리. 가운데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이 남문 디지털 전시관이 들어설 병영체험관, 오른쪽 현대식 건물이 역사홍보관이다. 지금은 별다른 콘텐츠가 없어 텅빈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김민진 기자 핵심 시설인 청남루를 빼고 조성된 통제영거리. 가운데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이 남문 디지털 전시관이 들어설 병영체험관, 오른쪽 현대식 건물이 역사홍보관이다. 지금은 별다른 콘텐츠가 없어 텅빈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김민진 기자

김상환 전 경상국립대 사학과 교수는 “통영을 ‘토영’답게 만든 곳이 청남루다. 근대정신과 문화의식이 발생한 중요한 랜드마크”라면서 청남루 실물 복원을 강력 주장했다. 숙종 때 시작된 통제영의 건설과정에 통제영을 외부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표상으로 통제영 후반기 문화와 경제 그리고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공간이자, 근대적 광장 역할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통영시의회도 실물 복원에 힘을 싣고 있다. 김미옥 의장은 “청남루는 서울로 치면 남대문이다. 2015년에 이미 47억 규모 복원계획과 설계도까지 나오고 착공만 하면 되는 단계까지 갔었다”며 “청남루의 위상과 역할을 감안할 때 디지털 복원은 매우 유감스러운 선택”이라고 꼬집었다.

청남루 실물 복원을 놓고 빚어진 논쟁은 청남루 복원의 최대 걸림돌이 돼버린 미수용 부지 내 옛 금강제화 건물로 번졌다. 해당 건물이 통영지역 독립운동가 2명을 죽게 만든 일본인의 가게였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시가 2021년 발간한 <통영지역 항일독립운동사>에 따르면 1919년 서울에서 3·1만세운동이 시작되자 통영에서도 허장완, 이학이 열사 주도로 3월 13일(음력 2월 12일)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독립선언문을 등사하기 위해 한 상점에서 구입한 미농지 2000여 장으로 인해 덜미가 잡혔고 허장완 열사는 모진 고문 끝에 옥사했다. 이학이 열사는 가석방됐지만, 고문 여독에 며칠을 못 버티고 숨을 거뒀다. 당시 미농지를 산 곳이 일본인 나카무라가 운영하던 ‘중촌상점(中村商店)’으로 문제의 해당 건물이라는 것이다.

김상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경남부산울산지회 총무간사는 “나카무라는 일제강점기 권력의 중심인 통영학교조합 회원으로 일본 경찰의 밀정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1937년 12월 2일 자 조선시보를 통해 일본군을 ‘황군(皇軍)’으로 칭하며 무운 장구를 기원했고, 천황 생일이나 신사 봉안 때도 본인 또는 상점 명의로 일제를 미화, 찬양하는 광고를 꾸준히 게재했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은 “독립운동가를 죽인 일본인 건물 때문에 청남루 복원을 못 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며 “이번 기회에 문제의 건물을 철거하고 일제에 파괴됐던 통영의 자존심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통영시는 디지털 전시관은 방치된 병영체험관 활용 방안 중 하나일 뿐, 실물 복원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2020년 문화재청이 해당 건물을 포함한 주변 일대 1만 4473㎡를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묶어 국가등록문화재(제777호)로 지정한 만큼 이를 푸는 게 먼저라는 입장이다. 김호석 시 문화복지국장은 “부지수용이 안 돼 국비 일부를 이미 반납한 데다, 소요 사업비도 당초보다 크게 높아져 당장 시기를 장담하긴 어렵다”면서 “일단 등록문화재 제외를 위해 문화재청과 협의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에 표시된 청남루(통제영 남문). 김상현 사료조사위원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에 표시된 청남루(통제영 남문). 김상현 사료조사위원 제공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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