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은 환자·지역 주민·국민 보편적 건강권 보장하는 것”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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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원 부산시간호사회 회장

간호인력 처우 개선 법안 국회 회부
5년간 법 제정에 혼신·삭발 시위도
간호사 의료기관 장기근속 근간 될 것

“저는 간호법이 없는 100년의 역사에서 살아왔지만, 후배들은 간호법의 보호를 받는 100년을 살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대한간호협회 창립 100주년을 맞은 황지원 부산시간호사회 회장의 결연한 다짐이다. 새로운 100년을 앞둔 간호협회의 주요 현안은 단연 간호법이다. 간호법은 전문간호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정하고, 간호인력의 권리 보장과 처우개선 등을 담은 법안이다. 지난달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8개월 동안 계류됐던 간호법은 이달 9일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이제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둔 상황이다.


간호사로 44년을 살아온 황 회장은 지난 5년간 간호법 제정에 매달렸다. 현장에서 간호법이 없어 고생하는 동료들을 수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황 회장은 간호법을 “간호사가 간호사의 일만 하도록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 말이, 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황 회장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정해지지 않다 보니 채혈사 업무도 맡고 방사선사 업무도 맡는다. 의사 업무를 대신하기도 하고 야간에 약사가 없는 곳에는 약사 업무를 하기도 한다”면서 “이 모든 게 사실 불법인데 병원은 간호사에게 이 모든 일을 맡기고 있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정하고, 이에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간호법”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간호사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도 간호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 간호법을 통해 간호사 1명이 볼 수 있는 환자의 수도 명확히 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황 회장은 “간호사 1명이 많게는 25~30명의 환자를 보기도 한다. 업무가 너무 많다 보니 신규 간호사 절반은 1년 내에 일을 그만두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현장에서는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간호사 처우 개선 없이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행 의료법의 경우, 의료기관 개설·운영에 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 간호인력의 육성과 처우개선, 장기 근속방안 마련 등에 포커스를 맞추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간호법은 간호사가 의료기관이나 지역사회에서 장기근속할 수 있는 근간이 될 것”이라면서 “이는 결국 환자와 지역 주민, 국민의 보편적 건강권을 보장하는 민생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간호법이 없다 보니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들에게 많은 제약이 있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보건소나 소방서, 교정시설, 보건교사 등 지역사회에서 많은 간호사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현 의료법상으로는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황 회장은 한 사례를 소개했다. “협회로 소아 당뇨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가 전화가 왔어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가 돼서 간호사가 있는 어린이집을 알아봤는데, 의사 없이 간호사가 인슐린 주사를 놓으면 불법이라서 못 놓는다고 했답니다. 이게 간호법이 없는 현실이에요.”

5년간 간호법 제정에 매달려 온 황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간호법이 제정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코로나19 당시 눈코 뜰 새 없이 고생한 결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이후에 오래도록 법안이 계류된 것을 보며 가슴을 쳐야 했다. 황 회장은 지난해 11월 전국시도간호사회장과 함께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며 삭발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삭발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씁쓸했지만, 지난 9일 간호법이 새 국면을 맞으면서 다시금 힘을 내고 있다.

황 회장은 의사·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 등 타 직역 단체가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지만,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간호법은 타 직역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안이 아니며, 간호사가 단독 개원을 하는 법도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다”면서 “간호법에 대한 왜곡된 해석에 대해 반박하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내용을 홍보하면서 부산지역 2만여 명의 간호사와 함께 간호법 제정을 위해 온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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