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무너졌으면 자유 대한민국은 없었을 겁니다” [한국전쟁 정전 70년 한신협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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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전쟁, 기억해야 할 미래]
참전 유일 생존자 류승석 씨

북한군 위장해 정보 수집 활동
공식 기록 없어 인정 못 받아
“나는 산 생명 아니라고 생각”

마산방어전투에 학도병으로 참전한 류승석 씨가 지난달 3일 전투 당시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마산방어전투에 학도병으로 참전한 류승석 씨가 지난달 3일 전투 당시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마산이 무너졌으면 지금의 자유 대한민국은 없을 겁니다.”

마산방어전투 참전자 중 현재 유일한 생존자인 류승석(93) 씨는 방어전투의 중요성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고 얼마 뒤 류 씨는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한다. 마산 월영동에서 단 일주일간 훈련을 받은 뒤 진주, 남원, 순천, 하동의 전투를 거쳐 8월 다시 마산으로 돌아온다.

그가 방어전투에 투입되면서 받은 주된 임무는 북한군 정보 수집이었다. 전투 당시 미군과 국군 정보가 일치하지 않아 혼선을 겪었기에 군은 학도병들을 북한군 진지에 투입해 적의 전력, 위치 등을 파악하기로 했다. “특무대 간부가 북한군 진지에 투입되기 전 학도병들에게 ‘너희는 산 생명이 아니다’라면서 목숨을 걸고 적의 정보를 파악하라고 하더군요. 너무 어린 나이라 죽음이 무섭지도 않았죠. 단지 전쟁이 났으니 적과 싸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부대원 30명 중 류씨를 포함한 15명은 진동, 나머지 15명은 함안으로 향했다. 그들은 인민군처럼 보이기 위해 인민군복을 입고 공산당 문양이 박힌 모자를 쓴 채 적진으로 들어갔다. 임무 기간은 일주일이었지만, 아군이 없는 적진에서 임무 수행은 어렵다고 판단해 5일 만에 복귀하게 됐다. 진동에 투입된 15명의 학도병 중 살아 돌아온 이는 5명뿐이었다. “저희는 북한군으로 위장했기에 복귀하기로 한 날에 맞춰 아군 진지로 와야 미군 공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틀 일찍 복귀했기에 하마터면 미군이 학도병들을 북한군으로 착각하고 총을 쐈을 수도 있죠.”

그의 학도병 활동 공식 기록은 없다. 참전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은 그가 학도병에서 나온 후 곧장 공군에 입대했기 때문이었다. “학도병들이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국군 해병대와 미군 25사단은 공격에 들어갔습니다. 승전으로 해병대는 특진하는 등 공을 인정받았지만, 저희는 학도병이었기에 아무것도 없고 제대로 된 기록조차 없습니다.”

노병의 마지막 소원은 마산방어전투를 기억하고 미래 세대가 안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전쟁기념관이 건립되는 것이다. “한국전쟁 중의 다른 전투에는 전쟁기념관이 있어 매년 그곳에서 관련 행사가 열리고 지역 학생들이 안보 교육을 받습니다. 하지만 마산방어전투는 기념관도 없이 잊히고 있죠. 죽기 전 기념관이 건립돼 방어전투가 계속 국민에게 기억됐으면 합니다.”

글·사진=박준혁 경남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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