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징검다리] 형제복지원 악몽에 산산히 부서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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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 누명 끌고가 4년간 감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후유증
아버지 암 투병 돌보다 빚더미
과거 경력에 취업 번번이 무산

민석 씨는 아직도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악몽은 민석 씨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고, 동생의 목숨까지도 빼앗았습니다. 일어서보려 발버둥 치지만, 지독한 꼬리표는 떼어지지 않습니다.

민석 씨는 5살 때부터 동생과 떨어져 살았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는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갔습니다. 민석 씨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습니다. 가난했지만 평화롭던 삶은 14살 때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하교하던 민석 씨의 앞을 경찰관 두 명이 가로막았습니다. 경찰은 민석 씨에게 빵을 훔쳤다는 죄명을 씌웠고 그를 형제복지원에 보냈습니다.


그날부터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끝나지 않는 구타와 인권유린을 겪었습니다. 주린 배를 감싸 안고 잠이 들던 나날이었습니다. 2년째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던 민석 씨는 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민석 씨의 동생마저 절도 누명으로 형제복지원에 끌려온 겁니다. 동생은 민석 씨를 찾으러 부산에 왔다가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지옥 같은 시간을 버틴 민석 씨는 4년이 지나서야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겨우 살아나왔지만 형제의 삶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민석 씨의 온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고 치아도 대부분 빠졌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민석 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그래도 살아보기 위해 갖은 일을 했습니다. 원양어선도 탔고 연극배우로 몇 번 무대에도 섰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동생의 죽음 이후 민석 씨도 방황했습니다. 그러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모임을 알게 됐습니다.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연대했고, 참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이번엔 민석 씨의 마지막 버팀목인 아버지마저 암 투병을 시작하셨습니다. 치료비와 간병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어 대출과 현금서비스까지 받으며 노력했지만, 아버지는 결국 지난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가족이 모두 떠나고, 민석 씨 곁에는 빚더미와 상실감만 남았습니다.

민석 씨는 삶을 비관하며 극단적 선택도 시도했지만, 주변의 만류에 겨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지만 쌓여있는 채무 고지서를 볼 때마다 가슴 한편이 답답해집니다.

민석 씨가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은 운전뿐. 택시 기사를 하려 지원서도 넣어봤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발목이 잡힙니다. 형제복지원 출신, 집회 주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민석 씨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세요. 민석 씨가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많은 도움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모라3동 행정복지센터 김슬기

△계좌번호 부산은행 315-13-000016-3 부산공동모금회 051-790-1400, 051-790-1415.

△공감기부(무료) 방법-부산은행 사회공헌홈페이지(www.happybnk.co.kr) 공감기부프로젝트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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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됐습니다-지난달 17일 자 지은 씨

지난달 17일 자 지은 씨 사연에 후원자 78명이 342만 78원을, 특별후원 BNK 부산은행 공감 클릭을 통해 300만 원을 모아주셨습니다. 후원금은 그동안 지은 씨 가족의 생계를 어렵게 한 대출 원금을 갚는데 쓰일 예정입니다. 지은 씨는 후원과 격려를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며, 아이들을 밝고 씩씩하게 잘 키워가겠다고 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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