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다시, 동천의 기적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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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백양산 발원해 북항으로 흐르는
동천 유역은 한국 산업화의 상징
서면 번화가 등 부산 도시화도 견인
 
보행덱 이용객 늘면서 친수공간화
금융단지 도약·부전천 복원 기대
동천 하구에 엑스포 유치 ‘부푼 꿈’

부산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견인한 동천은 2010년부터 해수 도수 사업을 실시했지만 수질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동천은 하구에서 미군 55보급창과 자성대부두가 있는 북항과 만나 바다로 들어간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견인한 동천은 2010년부터 해수 도수 사업을 실시했지만 수질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동천은 하구에서 미군 55보급창과 자성대부두가 있는 북항과 만나 바다로 들어간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산이 많아 처음에는 부산(富山)으로 불렸던 부산(釜山)의 그 많고 많은 산 중에서 도시 전체를 조망하기에는 백양산이 제격이다. 부산의 중심에 자리 잡아 동서남북은 물론이고 서면 도심과 그 너머 북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까닭이다. 선암사 극락전 앞마당에 서면 백양산에서 발원한 동천의 하구와 만난 바다가 햇살에 하얗게 부서지면서 유유한 강줄기로 이어져 절집 이름이 애초에 왜 견강사(見江寺)였는지 짐작게 한다.

바다와 강, 산을 두루 품어 부산을 삼포지향(三抱之鄕)이라 하지만 산을 자주 찾는 이라면 산과 강, 바다는 굳이 나눌 게 못 된다는 것을 안다. 산에서 강이 나오고 그 강이 바다를 이루기에 산은 물이요, 물은 곧 산이다. 산신과 바다의 신 용왕을 하늘 가까운 산에 있는 사찰의 삼성각에서 두루 만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부산은 백두대간의 낙동정맥에 터 잡고 낙동강, 보수천, 동천, 온천천을 비롯한 수영강 등을 젖줄로 삼는다.


독일에 라인강의 기적, 서울에 한강의 기적이 있다면 부산에는 ‘동천의 기적’이 있다. 라인강과 한강이 독일과 한국의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의 상징이라면 동천은 한국 산업화와 부산 도시화의 견인차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 LG그룹의 밑거름인 락희화학과 금성사를 비롯하여 조선방직, 동명목재, 성창기업, 국제그룹, 화승그룹, 넥센그룹, BN그룹, 동성화학, 송월타올 등 국내 유수한 기업의 터전이었다. 산업화 물결에 맞춰 도시화도 서면 번화가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진행됐다.

부산의 도심·부심 자리를 놓고 광복·남포동의 보수천 유역과 경합을 펼쳐 온 동천 유역은 ‘똥천’이라는 말에서 보듯 옛 영화를 뒤로하고 몰락의 길을 재촉해 왔다. 한때 부산의 관심은 되살아난 온천천을 비롯하여 센텀시티와 마린시티가 있는 수영강 유역으로 옮겨 가기도 했다. 악취와 오염의 대명사였던 동천은 백년하청이요, 강변의 문현금융단지도 더디기만 했다. 그렇게 지리멸렬을 거듭했고, 소생 불능의 판정을 받은 듯 시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최근 저녁 자리를 마치고 산책길에 나선, 부산시민회관에서 요즘 핫하다는 전포 카페거리에 이르는 동천변에는 봄밤의 달콤함이 묻어났다. 문현금융단지 앞 보행덱에는 제법 많은 시민이 오갔고, 가벼운 운동을 하며 담소를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BNK 본점, 기술신용보증기금 본점, 뮤지컬 전용 극장 드림씨어터, 증권박물관 등의 네온사인이 낮과는 사뭇 다른 정취를 안겼다.

올 하반기 부산 이전이 확정된 국책은행 KDB산업은행 본점이 여기에 가세한다면 금융중심지 부산은 날개를 달게 되는 셈이다. 상반기에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하반기 공공기관 2차 이전 때는 반드시 부산에 올 수 있도록 정부와 부산시, 산은 이전단을 중심으로 한 치의 차질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출입은행과 수협중앙회 등이 잇따라 부산에 오는 데 미리 탄탄대로를 닦는 계기가 되어야 마땅하다.

2009년 서울 여의도와 함께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부산 문현금융단지는 15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금융중심지라는 이름값부터 하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회사 167곳 중 98%(164곳)가 서울에 쏠린 극심한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도록 국제 금융회사 유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 블록체인 특구 부산에 걸맞게 핀테크와 블록체인 기술, 금융을 융합한 디지털자산 거래 플랫폼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마침 부전천 복원사업도 다시 시동이 걸렸다. “생태하천 사업으로 보기 어렵다”며 2018년 환경부가 퇴짜를 놓았지만 지난해 말 환경부 공모에 선정돼 국비 확보의 길이 열렸다. ‘물관리 일원화’로 환경부가 생태 업무에다 치수 업무까지 맡으면서 사업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광무교~롯데백화점 750m와 영광도서~동해선 굴다리 550m의 복개도를 걷어 내고 하층부는 치수, 상층부는 친수 기능을 각각 맡는 이층식 하천으로 공원화된다. 윗물인 부전천이 맑으면 아랫물인 동천도 맑아지게 마련이다.

2032년 부전천 복원 사업 완공에 맞춰 동천 해수 도수 사업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2010년부터 바닷물을 끌어와 광무교, 범3·4호교, 성서교 등 6곳에 방류해 왔지만 목표치인 4등급 근처도 못 가는 최하위 5등급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동안 헛돈 345억 원만 날린 셈이다. 오염된 바닷물로 동천을 씻어 내렸는데, 바닷물로 민물 수질을 개선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마뜩잖다.

백양산에서 발원한 동천이 생태적인 건강을 회복한 채 서면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면 부산의 미래이자 희망이 될 북항의 바다와 만나게 된다. 2030부산엑스포가 유치되면 동천 하구에 있는 미군 55보급창과 자성대부두는 엑스포의 주 무대로 단연 기대를 모은다. ‘다시, 동천의 기적’을 꿈꾸는 것은 그래서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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