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몰고 장터 가는 모습…화면 곳곳에 기록된 ‘시대’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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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이상 촬영 정정회 사진가
광주 ACC ‘아시아의 사진’
부울경 아카이브 작가 선정
‘사람’ 기록 4000여 점 기증

카메라 도둑 맞고 첫 개인전
“부산에도 보존 기구 생겼으면”

정정회 사진가는 “부산 중요 사진가들의 기록을 보존할 수 있는 기구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정정회 사진가는 “부산 중요 사진가들의 기록을 보존할 수 있는 기구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50여 년 동안 사진을 찍어 온 보람을 느낍니다. 사진가로서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펼쳐보였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아는 것은 물론 잊고 있던 삶의 모습까지 담으려 했어요. 그런 점이 인정을 받은 것이지요.”

부산 사진계에서 ‘후기 리얼리즘 시대’를 열었던 정정회(84) 사진가는 최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아카이빙 대상 작가로 선정돼 4000여 점에 이르는 사진 작품을 기증했다. ‘달관한 공간 구성력으로 화면 구석구석 빈틈없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평을 듣는 그의 사진들이다.

그의 작품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부산 일대의 시장풍경, 농촌풍경, 일상풍경을 기록한 소중한 사진”이라는 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설명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15년 개관 이후 전국 사진가 8명을 선정해 ‘아시아의 사진’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작업을 해왔다. 부산·울산·경남에서는 유일하게 정 사진가의 작품이 아카이브 대상 사진으로 꼽힌 것이다.

정정회 사진가의 ‘경북 청도, 1971’. 이 사진의 주인공이 40여 년 만에 작가의 전시장을 찾아왔다고 한다. 정정회 제공 정정회 사진가의 ‘경북 청도, 1971’. 이 사진의 주인공이 40여 년 만에 작가의 전시장을 찾아왔다고 한다. 정정회 제공

거제도 출생으로 통영에서 자란 그는 부산대를 졸업하고 부산은행에 입사해 사진동호회 회장을 떠맡으면서 사진에 입문하게 됐다. 그는 사진 쪽에서 임응식 정인성 등이 개척한 부산 리얼리즘 예술의 맥을 이어왔다. 한국전쟁 때 피란수도 부산이 품었던 삶의 무게, 비극적 모습이 ‘부산 리얼리즘 사진’을 더 추동했을 터이다.

그 흐름 속에서 그는 1971년 최민식 김복만 배동준 이준무 정영모 등이 활동하던 황금기의 ‘청사회’(1967년 창립)에 가입해 철저한 사진 수업을 거쳤다. “청사회에서는 매달 월례회를 열었어요. 부산 1세대 사진가인 정인성 선생도 가끔 나오시는 월례회 때 각자의 사진 5점 정도를 벽면에 걸어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어중간한 사진은 올리지도 못했지요.” 그는 “촬영 나갔을 때 청사회 초대회장 최민식 선생은 사진 찍는 속도가 빠르고 참 잘했다”고 기억했다. 그 속에서 여문 것이 그의 리얼리즘 사진이었다.

그는 풍경보다는 그 속의 사람을 기록했다. 계기가 있었다. 1970년대 초반 최민식 사진가와의 인연으로 부산에 온 일본의 유명 사진가 이와미야 다케지가 그의 사진들을 보고 “당신 사진은 알맹이가 없는 헛방을 찍고 있다”며 일침을 놨다. “모티브를 잡아라”는 지적에 충격을 먹고 ‘사람에 주안점을 둔 사진’을 찍게 됐다는 것이다.

정정회 사진가의 ‘전남 담양, 1970’. 정정회 제공 정정회 사진가의 ‘전남 담양, 1970’. 정정회 제공

1977년 우정에 의해 곡절을 넘긴 사연도 있다. 당시 집에 도둑이 들어 비싼 카메라 장비 일체를 몽땅 훔쳐 간 것이다. 실의에 휩싸여 “앞으로 사진 안한다”고 했다. 청사회의 김석만 배동준이 와서 “정 형, 필름 좀 보자”고 해서 포기하는 심정으로 다 내줬는데 그들이 첫 번째 개인전을 꾸며줬다고 한다.

그런 ‘인간적 우정’에 의해 그 뒤를 이어 ‘장날’ ‘서해안 풍어제’ ‘종묘제례’ ‘평화와 희망의 뱃길’ ‘예술의 맥’ ‘장날 반추전’ 등 이름으로 열린 그의 개인전은 ‘사람’을 기록할 수 있었다. 2013년 고은사진미술관 ‘장날 반추전’ 때 소를 몰고 장터로 가는 1971년 청도 사진의 주인공이 전시장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분이 ‘소를 팔아 제가 시집가고 그랬다’며 마침 부산 문현동에서 산다고 손자들을 데리고 찾아왔어요. 사진 속 인물을 40여 년 만에 만난 거지요. 놀랍고 기뻤어요.”

그는 “기록은 중요하다”며 “부산의 중요한 사진가들이 남겨놓은 필름이 자꾸 사라지는데 그 기록을 보존할 기구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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