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체르노빌의 개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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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당시 일본 사람들이 가졌을 충격과 공포를, 지금 우리가 온전히 짐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9년 뒤인 1954년 영화 ‘고질라’가 일본에서 개봉된다. 고질라는 원자폭탄 실험으로 인한 방사선 피폭으로 생겨난 괴수. 기괴한 외모에 50m에 이르는 거대한 덩치, 불까지 내뿜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고질라는 도쿄를 일순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 일본인들의 원폭 경험에 따른 공포와 트라우마가 고질라라는 괴수로 표출된 것이다.

그런데, 방사선 피폭으로 고질라 같은 괴수가 나올까.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중론이긴 하나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방사선은 세포막을 파괴하고 DNA 체계를 무너뜨린다. 공포스러운 괴수까지는 아닐지라도 기이한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는 있다.

이른바 ‘체르노빌의 개들’에 대해 그런 우려가 있어 왔다.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방사선 누출 사고’ 직후 피해 지역 주민들은 개들을 버려 두고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방사선 확산을 우려한 옛 소련 당국이 반려동물의 지역 외 유출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후 체르노빌 주변은 지금껏 출입이 금지돼 있다. 사람들은 방사선에 피폭됐을 개들이, 대부분 죽었거나, 살아남았더라도 심각한 유전자 변형으로 사람에게 위협이 될 괴물이 되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다. 많은 과학자들과 생태학자들이 사고 후 37년이 흐른 지금까지 체르노빌의 개들을 주시하는 이유다.

현재 체르노빌 안팎에는 1000마리가 넘는 개들이 야생 상태로 있고, 그 대부분이 사고 당시 생존한 개들의 후손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4일 마침내 한 과학 전문 저널에 이 개들의 유전 구조를 분석한 논문이 처음으로 게재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체르노빌의 개들은 같은 종이라도 다른 지역의 개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유전적 변화를 거친 것으로 확인됐지만, 괴물은 아니었다. 야생으로 있으면서도 먹이를 주면 꼬리를 흔드는 등 사람에 대한 거부감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방사선 피폭으로 황폐화한 환경 속에서 살아 남기란 몹시도 힘겨운 일이었을 테다. 개들이라 말을 못해서 그렇지, 대를 이으면서 겪어야 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그럼에도 본성을 잊지 않은 채 끈질기게 이어 온 그 생명력이 경이롭다. 재앙을 일으키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을 몹시도 부끄럽게 만든다고나 할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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