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여성 지휘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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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 영화 ‘TAR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여성 상임지휘자 리디아 타르의 이야기다.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케이트 블란쳇의 열연은 타르가 실존 인물이었다고 믿을 정도다. 베를린 필은 카라얀이 재임 후반기인 1982년에서야 여성을 제1 바이올린 정단원으로 처음 뽑았을 정도로 차별이 심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중요한 공연에서는 여성 연주자 지명을 잘 하지 않아 악명이 높았다. 이랬던 베를린 필도 지난달 처음으로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비네타 사레이카를 악장으로 임명했다. ‘타르’는 먼저 온 미래인 것이다.

클래식 음악계는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여성의 진입이 힘들었다. 미국 음악가 노조는 1904년까지 여성 음악가의 가입을 막았다. 1913년 런던에서 최초로 여성 음악가가 오케스트라에 취직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뉴욕 필하모닉도 1966년까지 여성 단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여성이 들기에 가장 무거운 것이 지휘봉’이라는 농담이 있을 만큼 지휘 부문의 여성 차별은 심했다. 안토니아 브리코는 최초로 뉴욕필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지휘한 능력 있는 지휘자였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끝내 제대로 된 교향악단에 정식 채용되지 못했다. “여성 밑에서 노래할 수 없다”는 항의에 메트로폴리탄에서 해고되는 아픔도 겪었다.

100명 가까운 단원 대부분이 남성인 오케스트라를 여성이 이끌려면 남성보다 더 강해 보일 필요가 있다. 지휘대에 도전하는 여성은 남성 복장을 하고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행동을 보여 주곤 했다. 영화 속에서 다소 여성 혐오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로 해석된다. 토드 필드 감독은 ”만약 이 작품이 백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져 누구도 부패한 권력의 모양새를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지휘자가 세 명이나 활동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부산 출신의 성시연(48)은 뉴질랜드 오클랜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다. 김은선(43)에겐 미국 메이저 오페라 최초 여성 지휘자라는 타이틀까지 붙었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이자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의 수석 객원지휘자를 맡고 있다. 장한나(41)는 스타 첼리스트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지휘자로 성장하고 있다. 2017년부터 노르웨이의 트론헤임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유리천장은 깨어져야 할 벽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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