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기 무덤서 깨어나는 '대가야'의 숨결…경북 고령 가야사 여행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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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왕국 '대가야'의 역사를 오롯이 품은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44호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 보면, 능선을 따라 점점이 이어진 고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잊힌 왕국 '대가야'의 역사를 오롯이 품은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44호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 보면, 능선을 따라 점점이 이어진 고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울산·경남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나라에 가닿을까. 대개 신라를 떠올리겠지만, 역사적 뿌리는 가야와 더 가깝다. 최근 <부산일보>는 ‘깨어나는 가야사’ 대기획을 통해 가야사를 집중 조명했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에 가려 잊힌 왕국 가야. 특히 후기 가야연맹을 이끈 대가야는 철기 제조술과 우륵의 가야금 등 뛰어난 문화를 지닌 고대국가로 여겨진다. 깨어나는 봄을 맞아 가야연맹의 최전성기를 깨운 대가야의 고장, 경북 고령을 찾았다.


■500년 찬란한 역사를 한눈에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위치한 ‘지산동 고분군’은 5~6세기 대가야의 번성기를 오롯이 보여주는 역사유적이다.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싼 주산의 남쪽 능선을 따라 왕족 등 지배층 묘역 700여 기가 분포한다.

지산동 고분군을 둘러보려면 나름의 순서가 있다. 고분군 기슭에 자리한 대가야박물관의 대가야역사관·대가야왕릉전시관을 먼저 방문하면, 고분군의 역사적 배경과 대가야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가야역사관은 대가야를 비롯해 고령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2층 상설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엔 서기 42년 대가야의 건국부터 562년 멸망, 이후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령지역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연표로 정리돼 있다.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자리한 대가야박물관. 뒤편으로 지산동 고분군이 보인다.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자리한 대가야박물관. 뒤편으로 지산동 고분군이 보인다.
가야의 건국신화를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흙방울'. 가야의 건국신화를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흙방울'.

전시실엔 대가야의 찬란한 문화가 빚은 2000여 점의 유물이 전시 중이다. 특히 지산동 705호분에서 나온 ‘흙방울’은 1500년 전 타임캡슐로 불린다. 지름 5.3cm의 작은 방울에 새긴 6가지 그림이 가야의 건국신화를 연상시키며 신비함을 자아낸다. 갑옷과 무기류, 말갖춤(말을 제어하는 각종 도구) 등 다양한 철기 유물은 ‘철의 왕국’ 대가야의 위용을 짐작케 한다.

지산동 ‘73호분’(2007년 발굴) 내부를 재현한 전시도 인상적이다. 73호분은 서기 400년 전후 대가야 왕릉 출현기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대가야 ‘최초 왕릉’이다.

역사관을 나와 오른쪽(서쪽) 샛길로 몇 걸음만 옮기면 고분을 닮은 돔 지붕의 대가야왕릉전시관이 나타난다. 이름처럼 지산동 왕릉 중 44호분(1977년 발굴) 내부를 원래 모습 그대로 재현한 전시관인데, 가야의 순장 문화를 잘 보여준다.

순장은 왕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으면 주변 사람과 동물을 함께 묻는 장례풍습이다. 44호분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확인된 순장 무덤인데, 순장자가 40여 명에 이르러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 중 최대 규모다. 순장된 이들은 10~60대 남자 여자로, 저승에서 왕의 생활을 도울 시녀·호위무사·창고지기·마부 등 직책도 다양하다. 전시관 바닥엔 왕과 함께 순장된 이들의 모형이 실제처럼 안치돼 있다. 생생함을 더하는 동시에 순장 문화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대가야 왕릉전시관에 재현된 고령군 지산동 44호분 내부 모습. 대가야 왕릉전시관에 재현된 고령군 지산동 44호분 내부 모습.
44호분에서 45호분으로 올라가는 길. 오르막이 끝나면 지산동 고분군의 정상이라 할 만한 곳이 나온다. 44호분에서 45호분으로 올라가는 길. 오르막이 끝나면 지산동 고분군의 정상이라 할 만한 곳이 나온다.

■고분군의 숨결과 우륵의 음악

대가야왕릉전시관을 나오면 앞뒤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지산동 고분군이 자리한다. 44호분 등 주요 고분은 전시관 뒤편에 위치한다. 고분군으로 향하는 산책로로 접어들자마자 작은 봉분들이 여기저기 시야에 들어온다. 적당한 크기, 완만한 높이의 무덤들이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자연의 일부인 듯 조화롭다.

5분쯤 올랐을까. 뒤를 돌아보니 멀리 도로 건너 남쪽 고분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을 따라 점점이 이어진 무덤들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형상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봉분 하나하나마다 대가야인의 숨결을 내뿜는 듯하다.

산책로는 경사가 꽤 있는 편이다. 금동관·갑옷·투구 등이 출토된 32~35호분을 지나 44호분에 이르면 숨돌릴 만한 평지가 나타난다. 더 위쪽 45호분과 5호분까지 가려면 좀 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등산이나 다름없는 코스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고분군의 전경을 더 한눈에 내려다보며 담을 수 있다. 중간중간 소나무 그늘과 벤치도 있어, 어르신이나 아이들도 쉬엄쉬엄 거닐 만하다.

왕릉전시관 쪽에서 올라왔으니 내려가는 길은 역사관 쪽으로 잡는다. 발길을 거꾸로 되돌려 44호분까지 내려온 뒤 32~35호분을 앞둔 갈림길에서 왼쪽(동쪽) 내리막길로 방향을 틀면 능선을 따라 대가야박물관 입구까지 이어진다. 산책길의 끝자락에서 최초 왕릉인 73호분도 만날 수 있다.

지산동 고분군은 주변 풍광을 카메라에 담으며 느긋하게 걸어도 한 바퀴 전체를 둘러보는 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가야금을 본딴 지붕의 '우륵박물관'. 가야금을 본딴 지붕의 '우륵박물관'.
우륵박물관에서는 악성 우륵과 가야금에 얽힌 다양한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다. 우륵박물관에서는 악성 우륵과 가야금에 얽힌 다양한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다.

대가야의 대표 유적이 지산동 고분군이라면, 대표 인물은 가야금 창시자인 우륵이다. 대가야박물관에서 차량으로 5분 남짓 달리면 우륵과 가야금을 주제로 한 ‘우륵박물관’이 있다. 지붕부터 가야금 모양을 본딴 듯 개성 있는 테마박물관이다. 대가야와 우륵에 얽힌 이야기를 비롯해 가야금의 변천사와 우리나라 전통 악기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해를 돕도록 거문고·아쟁·해금 등 악기별 음색을 비교하는 시설도 흥미롭다.

대가야 백성들의 생활상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대가야생활촌’을 들러볼 만하다. 주제별로 조성해 놓은 마을을 돌며 대가야인이 살던 움집과 고상가옥, 의복·대장간·토기·교역품 등 의식주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철의 원정대’ 미션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대가야인의 생활을 체험해볼 수 있다. 대가야생활촌 바로 옆엔 승마체험 시설도 있어 대가야의 기마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기 좋다.

대가야생활촌에서 경험할 수 있는 승마 체험. 대가야생활촌에서 경험할 수 있는 승마 체험.
고아리 벽화고분 모형관에 가면 백제 영향을 받은 벽화고분과 함께 환상적인 미디어 아트를 체험할 수 있다. 고아리 벽화고분 모형관에 가면 백제 영향을 받은 벽화고분과 함께 환상적인 미디어 아트를 체험할 수 있다.

■대가야 여행팁과 대표 맛집

대가야박물관과 지산동 고분군, 우륵박물관, 대가야생활촌,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등 고령지역의 대가야 관련 관광문화시설은 대부분 대가야읍에 오밀조밀 모여 있다. 자동차로 10분 이내여서 동선을 잘 짜면 당일 혹은 1박 2일 만에 빠짐없이 둘러볼 수 있다.

일정 중간 여유가 있다면 ‘고아리 벽화고분 모형관’도 방문할 만하다. 고아리 벽화고분은 석실 구조에 벽화도 있어, 대가야 후기에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고분은 안전상 이유로 영구폐쇄됐고 인근에 모형관을 만들어 석실을 재현했는데, 환상적인 미디어 아트도 체험해볼 수 있다.

대가야박물관은 입장권 1장으로 대가야역사관, 대가야왕릉전시관, 우륵박물관까지 3곳 모두 관람 가능하다.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은 무료 입장이다.

한편,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사흘간 대가야읍 일대에선 ‘2023 고령 대가야 축제’가 열린다. 지산동 고분군 야간투어, 대가야 별빛쇼(불꽃놀이), 가야금연주단 특별공연, 대가야박물관 기획특별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대가야 여행 도중 출출하다면, 현지인이 추천하는 오래된 가게를 들러보길 권한다. 대가야읍내 중앙네거리 인근 ‘진미당제과’ 찹쌀떡은 5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너무 달지 않고 쫀득한 식감이 어른 아이 모두 좋아할 맛이다. 매일 준비된 양만 판매해 일찍 동나기 때문에, 가능하면 오전에 들르는 게 좋다.

개진감자로 만든 ‘개진고로케’도 대표 맛집이다. 최근 확장 이전을 했는데, 여느 고로케와 달리 기름지지 않으면서 촉촉한 속이 특징이다. 옥수수·새우·계란·모찌·크림치즈·모짜렐라 등 고로케 종류도 다양해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카페도 함께 운영하는데, 특히 고령딸기로 만든 상큼한 딸기주스가 고로케와 잘 어울린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고령지역의 전통 가게인 진미당제과의 찹쌀떡. 고령지역의 전통 가게인 진미당제과의 찹쌀떡.
고령지역 전통 가게인 개진고로케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옥수수 고로케. 고령지역 전통 가게인 개진고로케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옥수수 고로케.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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