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에 제초제 살포한 간 큰 공무원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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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상림공원에 46kg 뿌려
독성 인한 방문객 피해 우려도

천연기념물 154호로 지정돼 있는 함양 상림.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숲으로 처음 조성했을 때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천연기념물 154호로 지정돼 있는 함양 상림.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숲으로 처음 조성했을 때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지난달 중순, 함양 상림공원 토요무대 앞 잔디밭. 하얀색 알갱이가 흩뿌려져 있었다. 소금 결정체 같아 보이는 이 알갱이들은 상림공원 내 잔디밭 3곳에 걸쳐 넓게 살포됐다. 하지만 이 알갱이 정체를 알게 된 지역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알갱이가 ‘제초제’였기 때문이다.

경남 함양군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공원에 문화재청과의 협의 없이 제초제를 뿌린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는 상황에서 천연기념물에 제초제를 뿌린 것은 섣부른 행동이었다는 지적이 거세다.


상림공원 잔디밭에 뿌려져 있던 제초제. 하얀 알갱이가 흩뿌려져 있다. 김현우 기자 상림공원 잔디밭에 뿌려져 있던 제초제. 하얀 알갱이가 흩뿌려져 있다. 김현우 기자

8일 군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상림공원에 고형제 형태의 제초제 ‘동장군’ 16봉지, 46kg을 살포했다. 공원 내 잔디밭에 잡초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현재 군이 상림공원 관리를 위해 고용한 기간제근로자는 16~17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일부는 청소와 화장실 관리 인원으로 배치되면서 실제 잡초 제거에 동원될 수 있는 인력은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힘이 부치다 보니 올해 제초제를 사용한 것이다.

군 관계자는 “상림공원 잔디밭 가운데 잡초가 많이 자라는 곳이 3곳 정도 있다. 인력으로 처리하기가 힘들어서 제초제를 사용했다. 대신 2차 피해가 가장 없는, 독성이 가장 약한 제초제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상림공원이 천연기념물이라는 데 있다. 상림공원은 신라 진성여왕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으로, 당시 숲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숲 면적만 21만㎡로 축구장 20여 개 크기에, 120여 종에 달하는 각종 수목 2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문화재청은 인공 숲으로의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해 지난 1962년 12월, 상림을 천연기념물 154호로 지정했다.

상림공원과 같은 천연기념물의 경우 문화재보호법 상 보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화학물질을 방출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제초제를 써야 한다면 문화재청에 미리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야 하는데 이 같은 사전작업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함양 상림공원 모습.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하루 수천 명이 이용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함양 상림공원 모습.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하루 수천 명이 이용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이에 문화재청은 상황을 파악 중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제초제 사용에 대해선 해석의 차이가 있다. 병해충을 방지하는 정도라면 허용할 여지가 있어 보이지만, 이번 사안과 관련해 미리 보고된 바가 없었다”고 밝혔다.

제초제의 약효 지속성도 문제다.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상림공원 잔디밭은 아이들이 자주 뛰어노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 뿌려진 동장군은 고체형으로 잔디 사이에 노출돼 있는데다 약효가 2~3개월 정도 이어져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비라도 오면 빠르게 녹겠지만 가뭄이 지속돼 이마저도 어렵다. 군은 결국 물을 뿌려 제초제 농도를 희석 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군은 내년부터는 더 이상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군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제초제를 쓰지 않을 예정이다. 인력을 조금 더 투입하더라도 제초제 없이 잡초를 제거하겠다”고 말했다.


공원 관리자들이 잔디밭에 물을 뿌려 제초제 농도를 희석 시키고 있다. 김현우 기자 공원 관리자들이 잔디밭에 물을 뿌려 제초제 농도를 희석 시키고 있다. 김현우 기자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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