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흥행한 한국 영화, 성인지 평가는 ‘퇴행’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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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델 테스트’ 통과 5년 중 최저
전년 대비 여성 창작 인력 감소
정형화 여성 캐릭터 다시 늘어

2022년 한국 영화 개봉작 중 주연 1~2가 ‘여성-남성’인 영화로 ‘벡델 테스트’를 유일하게 통과한 ‘정직한 후보2’. (주)NEW 제공 2022년 한국 영화 개봉작 중 주연 1~2가 ‘여성-남성’인 영화로 ‘벡델 테스트’를 유일하게 통과한 ‘정직한 후보2’. (주)NEW 제공

2018년부터 매년 증가한 한국 영화 여성 창작 인력 비율이 지난해 감소세로 돌아섰다. 한국 영화 흥행작 중 성평등 여부를 측정하는 ‘벡델 테스트’ 통과 비율도 최근 5년 중 지난해가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여파로 독립·예술영화가 줄어든 대신 흥행 영화 후속작이나 액션·범죄 영화가 늘어난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2022년 한국 영화산업 성인지 결산’ 보고서를 8일 발표했다. 성인지적 관점에서 본 한국 영화 캐릭터 분석과 창작 인력 성비 통계 등을 담았다.

2022년 개봉 영화 202편을 창작한 인력 중 여성은 26.0%였다. 지난해 26.3%보다 감소한 수치다. 여성 감독은 45명으로 20.2%, 제작자는 70명으로 22.2%, 프로듀서는 80명으로 31.4%였다. 주연은 104명으로 46%, 각본가는 66명으로 28.6%, 촬영감독은 31명으로 11.4%를 차지했다. 주연과 제작자를 제외하면 전년보다 감소한 비율이다.

특히 제작비 30억 이상 상업영화 개봉작 36편 중에는 여성 인력 비율이 16.9%였다. 전년 23.4%에서 6.5%P 감소했다. 예산이 많이 드는 상업영화에 상대적으로 여성 진입 장벽이 높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주연 배우는 29편이 남성, 7편이 여성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주연 1~2가 ‘남성-여성’인 영화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인생은 아름다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주연 1~2가 ‘남성-여성’인 영화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인생은 아름다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2022년 흥행한 30개 한국 영화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은 10편이었다. 주연 1~2가 ‘여성-남성’인 작품 3편 중 ‘정직한 후보2’만 기준을 넘겼고,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는 유일한 ‘여성-여성’ 영화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남성-여성’인 작품 5편 중에는 ‘해적: 도깨비 깃발’ ‘인생은 아름다워’ ‘자백’ 등 3편, ‘남성-남성’ 영화는 19편 중 ‘공조2: 인터내셔날’ ‘비상선언’ ‘외계+인 1부’ ‘브로커’ ‘탄생’ 등 5편이었다.

통과 비율은 애니메이션 2편을 제외하면 35.7%로 5년 사이 가장 낮았다. 2018년 36.7%, 2019년 43.3%, 2020년 53.6%로 늘었다가 2021년 39.3%에 이어 지난해 더욱 떨어졌다. ‘벡델 테스트’는 1985년 미국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만든 성평등 테스트로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등장할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대화에 남자와 관련되지 않은 내용이 있을 것’ 등을 만족해야 통과할 수 있다.

정형화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지 가늠하는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 해당 작품은 11편으로 39.3%였다. 2019년 43.3%에서 2021년 7.1%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 다시 비율이 높아졌다.

주연 1~2가 ‘남성-남성’인 영화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공조2: 인터내셔날’. CJ ENM 제공 주연 1~2가 ‘남성-남성’인 영화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공조2: 인터내셔날’. CJ ENM 제공

코로나19 여파로 상대적으로 흥행이 보장되는 후속작과 남성 중심 액션·범죄 영화가 많았던 여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2년 개봉작 중 저예산 독립·예술 영화는 190편으로 전년도 207편보다 줄어들었다. 영진위는 “여성 영화인들 주요 활동 무대였던 독립·예술영화 장이 축소되면서 성인지적 관점에서 퇴행적인 지표들이 많이 나타났다”면서도 “흥행이 보장된 대작 영화가 시장을 주도해 성인지적 관점에서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 과도기로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2022년 OTT 오리지널 영화 7편 중 벡델 테스트 통과작은 5편으로 85.7%를 차지했다. 표본이 많진 않아도 감독, 프로듀서, 각본가 직종 여성 비율은 극장 개봉작보다 높았다. 영진위는 “극장이 아닌 다른 플랫폼으로 여성 영화인이 이동하는 경향은 시장 확장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면서 “기존 시장은 성별에 따른 불평등한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영진위는 2022년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성 감독 작품이 돋보였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신수원 감독 ‘오마주’, 김진영 감독 ‘미혹’ 등을 상대적으로 흥행한 작품으로 봤다. 김정은 감독 ‘경아의 딸’, 김세인 감독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오세연 감독 ‘성덕’ 등은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다만 제작비 30억 이상 작품 36편 중 감독이 여성인 영화는 3편에 그쳤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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