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엔데믹 시대의 도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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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마스크 실내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그리고 얼마 뒤, 코로나19 확진자 수 안내 문자가 중단됐다. 한동안 안전 관련 안내 문자가 잠잠하다 했더니 “계속되는 건조한 날씨로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경계’ 단계 발령, 농촌 지역 소각 행위 금지, 불씨 관리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가 며칠째 계속 온다. 산불 뉴스를 보면서 봄이구나 생각했다. 경칩도 되기 전이었다. 해마다 봄철이면 집중되는 산불은 올해도 지난 5일까지 전국적으로 194건이 발생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기후와 토지 이용 변화로 산불이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강도도 세질 것”이라고 한다. 산불은 사람들의 실수나 쓰레기 소각 등 행위의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가뭄, 고온, 강풍 등 이상기후를 동반한 기후변화에 있다. 지구가열화에 따른 열이 가뭄, 화재, 대기질, 수질, 인프라, 농업, 인간과 동물의 건강에 대한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기후위기는 산불만 아니라 팬데믹도 데려왔다.

도시계획 역사는 곧 팬데믹 대처 역사

소득 따라 삶의 공간 차별되지 말아야

공동체의 중요성 고민하는 건축 필요

팬데믹은 인류 발전에 따른 자연의 역습이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고 코로나19 확진자 수 안내 문자가 중단됐다고 해서 팬데믹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엔데믹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얼핏 들으면 엔데믹은 팬데믹이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실 그런 뜻이 아니다. 엔데믹은 어떤 감염병이 특정한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원래는 풍토병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으나 코로나19 등장 이후 감염병의 주기적 유행이라는 새로운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 엔데믹 시대에는 팬데믹이 더 자주, 오래 지속될 수 있다.

팬데믹의 사회적 거리 두기는 도시와 건축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동안 우리의 건축 상황은 급속한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부끄럽게도 건축을 건설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아파트와 빌딩으로 대표되는 도시 건축물은 대부분 용적률 싸움이다. 좁은 땅에 얼마나 높이 지어 가치를 창출하느냐 하는 경제논리는 효율성을 앞세우고 획일적이고 비슷비슷한 건축물을 양산했다. 밀집된 도시는 계속되는 신도시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는 팬데믹 상황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기존 도시공간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 인류는 감염병을 겪을 때마다 확산을 막기 위해 도시의 재구조화를 모색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는 장티푸스 유행으로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도시계획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다무스는 당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격자형 가로망 체계를 고안해 인구 밀집을 분산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유럽 최대의 재앙이었던 흑사병의 경험은 본격적으로 이상 도시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붙였고, 1580년대 영국 왕 엘리자베스 1세는 흑사병 확산을 막기 위해 각 성문으로부터 약 5km 이내에 건물 신축을 금지하는 칙령을 선포하기도 했다.

1830년대 초에 발생한 콜레라는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이 감염병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했다. 이는 영국 의회가 세계 최초로 공중보건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 파리 역시 콜레라의 영향으로 1853년 도시를 재구축했다. 파리 개조 계획에 착수한 것이다.

이렇듯 건축과 도시계획 역사는 팬데믹 상황에 대처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렇다면 코로나19를 겪으며 엔데믹을 맞이한 지금 우리의 건축과 도시계획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엔데믹 시대는 위기와 재난이 일상이 되어 있는 ‘불안한 시대’이다.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기후변화는 폭우, 태풍, 산불, 지진, 해수면 상승 등 갈수록 심각해지며 위기 상황까지 와 있다. 공중보건, 의료, 도시환경 개선, 친환경 건축과 재난의 대비를 넘어 ‘복원’의 능력까지 갖춘 ‘리질리언스’ 개념을 도입한 미래도시를 계획한다 해도, 문제는 위기와 재난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보다 나은 삶을 바라는 인간과 기술의 접목이 소득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 달라지지는 않도록, 공간이 계급을 가르는 매개체로서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이 넘은 거리 두기는 ‘불안한 시대’를 함께하는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고 생업까지도 희생하며 이겨 온 팬데믹이다. 친환경, 생태, 불평등 해소, 커뮤니티 회복을 중심에 두던 건축에 대한 생각이 기술 중심으로 편리만 추구하는 건축에 묻힐까 걱정이다. 엔데믹 시대는 항상 팬데믹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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