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라지는 녹차밭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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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이야기를 하면 당나라 때 사람 육우(陸羽)를 빼놓지 못한다. 평생 차를 연구하고 책을 저술해 ‘다도의 조상’, ‘다성(茶聖)’으로 일컬어진다. 770년께 쓴 〈다경(茶經)〉은 차의 교과서로 불리는데, 그는 여기서 “차는 지상 최고의 청순(淸純)을 상징한다”고 극찬하며 “차를 끓이고 마시는 기쁨은 도저히 속인들과 나눌 수 없다”고 말했다. 차의 오묘한 맛과 은은한 빛깔, 그리고 차를 달이는 사람의 청순한 마음을 아꼈다.

우리나라 선인들의 차 사랑도 이에 못지않았다. 고려 말의 문인인 정포(鄭誧, 1309~1345)는 “가득 채운 찻잔에 그윽한 맛이 짙으니, 마시자마자 상쾌하여 골수를 바꾸는 듯하다”고 노래했다. 이외에도 차를 사랑한 선인들을 거론하자면 끝도 없다. 그만큼 차는 오래전부터 선인들이 특별히 아낀 기호품이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면면히 이어진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는 경남 하동이나 전남 보성의 녹차는 유구한 우리나라 차 문화의 높은 경지를 잘 보여 주는 농산물이다. 이런 연유로 이곳에서는 매년 녹차를 주제로 한 축제가 열려 많은 방문객이 우리의 전통 녹차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녹차 주산지인 하동의 녹차밭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녹차 재배는 잎을 직접 손으로 일일이 따야 하고, 제초 작업에도 손길이 많이 가는 대표적인 농사일인데, 갈수록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생산을 포기하는 농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민의 고령화와 함께 재배 비용도 더 들면서 최근 하동 곳곳에는 관리가 부실한 녹차밭이 예전에 비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하동군청의 집계에 따르면 2012년 1918가구에 달하던 녹차 재배 농가는 10년이 지난 2021년엔 1066가구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재배 면적 역시 30% 이상 줄었다.

전통 녹차의 위기는 생산뿐 아니라 소비 측면에도 닥쳤다. 사실상 ‘국민 음료’가 된 커피를 비롯해 다른 경쟁 음료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녹차의 영역은 갈수록 위축되는 모양새다. 요즘은 사찰에서도 점점 커피를 즐기는 추세라고 하니, 어떤 상황인지 알 만하다.

우리에게 전통 녹차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선 그 이상의 무엇이다. 만일 녹차밭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차와 차 문화 역시 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녹차밭 위기를 그냥 두고 볼 일 만은 아닌 것 같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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