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대통령의 여당? 여당의 대통령?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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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윤심’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당선
“대통령 뜻 잘 살펴야 윤 정부 성공”
당정분리 원칙 재검토 논의 급부상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답습 우려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중심은 정당
당정 간 힘의 균형 찾는 지혜 절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당대표 후보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당대표 후보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국민의힘 당원들은 ‘윤심’을 택했다. 8일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후보가 과반 득표로 결선 투표 없이 당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마음, 즉 윤심으로 시작해 윤심으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초 미미한 지지율을 기록했던 김 후보가 당선된 건 오롯이 윤심에 의존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전당대회는 국민의힘 앞날에 피할 수 없는 과제를 남겼다. 당정분리냐 당정일체냐,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다.

기실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대통령실 입장을 사실상 대부분 수용했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과 정당 민주주의 원칙 훼손 비판에도 비대위 지도부는 ‘대통령의 뜻을 잘 살피는 후보가 대표가 돼야 윤석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강요했다. 당정일체를 우선순위에 둔 것이다. 당 일각에서 윤 대통령을 명예 대표로 추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반면 이른바 비윤계 쪽에서는 당이 대통령과 어느 정도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에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폈다. 자칫 당이 대통령에 일방적으로 종속되면 결국 대통령의 독선으로 이어져 당과 윤석열 정부가 함께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국민의힘 내부에선 당정분리 원칙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에 대한 논의가 급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수립 후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오랜 기간 우리나라 여당과 대통령의 관계는 철저한 당정일체였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를 겸하면서 인사·공천·재정권을 장악해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당연히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원칙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타파하자고 나선 이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이 당을 장악해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유신 잔재”라며 당정분리를 선언했다. 대통령이 당 총재로서 당을 지배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하향식 당 운영을 막고 대통령의 당직 임명권과 공천권을 확실하게 배제하는 것이 당정분리라고 밝혔다. 이후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주당은 당헌에 대통령 당원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면서 당정분리 원칙을 명시했고, 그 영향을 받아 현 국민의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당도 당정분리를 지향하는 당헌 개정을 단행했다. 이후 우리 정치에서 당정분리는 하나의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당과 대통령의 관계를 칼로 무 베듯 확연히 자르는 건 불가능하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대통령을 배제하는 정치를 한다는 건 처음부터 어불성설인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고 협조하는 게 집권여당으로서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실제로 여당이 당정분리 원칙을 고수하면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주지 않을 때 국정 운영이 무기력증에 빠지는 사례를 과거 여러 정권에서 보아 온 터다.

이를 절실하게 느낀 이가 문재인 전 대통령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전 대통령이 보여 준 국정 운영은 ‘당정은 원팀’이라는 노선 위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사실상 당정일체를 강조한 셈으로, 문 전 대통령은 당정분리 원칙 때문에 참여정부가 실패했으며, 나아가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결말을 초래한 것으로 본 듯하다. 문 전 대통령의 이러한 노선은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함으로써 당위성을 잃었다고 하겠다.

정당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의 중심은 개인이 아니라 정당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무소속으로 출마하지 않은 이상 대통령의 정권은 당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는 ‘당정은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하여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강조된 건 ‘협조’ 체제다. 협조는 상명하복과는 다르다.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로서 서로 힘을 모으는 게 협조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당도 입법부의 일원이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다. 삼권분립을 원칙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입법부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집권여당으로서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전당대회가 끝난 지금 국민의힘은 당정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최대의 당면 과제가 됐다. 당정 간 적절한 힘의 균형에 대해 국민의힘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어느 경우든 분명한 건 과거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김기현 대표는 8일 당선 직후 JTBC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뜻과 국민의 뜻이 다를 경우 당연히 국민이 우선”이라고 발언했다. 윤 대통령도 당무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그럼에도 지금 국민은 묻는다.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인가, 국민의힘의 윤 대통령인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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